수학자 파스칼
수학자 파스칼
  • 김인수
  • 승인 2006.03.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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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인간은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한 줄기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위의 문구는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문구인데, 파스칼의 저서인 팡세에 나오는 문구이다.

 파스칼은 프랑스의 클레르몽에서 1623년 6월 19일 태어났다. 파스칼은 데카르트와 페르마, 데자르크 등과 같은 시대를 산 사람이었는데 데카르트와는 많은 일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지만 서로를 싫어하는 사이였다.

 파스칼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매우 열성적이어서 파스칼이 7살 때 파스칼과 그의 자매들을 데리고 시골에서 파리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의 지도로 파스칼은 모든 현상에 흥미를 나타내고 아버지에게 수학과 자연과학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가 12세가 되던 어느 날 파스칼은 아버지에게 “기하학이란 어떤 학문입니까?” 라는 질문을 했다. 이것에 대해 아버지는 “기하학이란 평면 위, 또는 공간 속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그것들의 성질을 조사해 가는 학문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수학에 대한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스칼은 친구들과 놀면서 땅 위에 삼각형을 그려 놓고 열심히 생각하다가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 도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본 파스칼의 아버지는 자기 자식의 천재성에 기쁨이 넘쳐 파스칼이 아무리 열심히 수학 공부를 하더라도 나무라지 않고 수학책을 많이 사 주었다.

 파스칼은 아버지가 사준 책을 혼자 읽고 그 의미를 이해했다. 중등과정의 수학에 나오는 파스칼의 삼각형은 이항 정리와 연산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고,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파스칼은 확률계산에도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그가 개척한 이 분야는 요즈음 선거철을 맞이하여 당선에 대한 기대치나 인가 상승에 따른 당의 지지도를 알아보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스칼은 17세부터 39세로 죽을 때까지 22년 동안 고통이 없는 시절을 보낸 적은 거의 없었다. 낮에는 심한 소화불량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밤에는 밤대로 만성불면증에 의한 악몽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쉴 새 없이 공부하고 연구하여 18세 때에 역사상 최초의 계산기를 발명하고 제작하였다.

 이것이 기본이 되어 오늘날의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시초가 되었다. 만약 그가 보통사람과 같이 건강하고 평균 수명을 누렸더라면 아마도 수학에 관한 한 획기적인 발전을 했으리라 확신된다.

 파스칼이 31세가 되던 해에는 수학적 귀납법을 처음으로 사용하는 등 수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나, 그해 11월에 큰 사고가 일어났다.

 그날 그는 친구와 마차를 타고 네위리 거리의 다리에 이르렀는데 돌연 말이 고삐를 끊고 달아나 두 사람의 승객이 강물에 빠졌다. 다행히 그는 구조되었지만 충격으로 수도원에서 요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도원의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그의 건강은 이전보다 더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35세가 되던 해에 수학의 대 논문을 썼다. 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어느 날 밤, 불면증과 치통으로 고민하다가 잠들기 전에 연구 주제에 관한 것을 생각하면서 고통을 잊으려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어느 사이엔가 그 고통이 사라져 버렸고 그는 이것이 연구를 계속해도 좋다는 신의 계시라 생각하여 그 후 8일간 여기에 몰두하여 마침내 연구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몸은 완전히 쇠약해졌으며, 그 후에 저 유명한 파스칼의 명상록을 쓰고 1662년 8월 19일 파리에서 위대한 과학자이자 수학자이고 종교사상가이기도 했던 파스칼은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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