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물을 바꾸자
노는 물을 바꾸자
  • 곽병창
  • 승인 2006.03.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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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게 잘 사는 길이다. 노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각박한 생산의 시간들을 보내고 맞이하는 진정한 휴식이자 또 다른 생산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놀고 쉰다는 뜻의 낱말 'recreation'이 '재생산'의 의미를 정확하게 담고 있을까? 그래서 잘 놀아보자고, 잘 놀고 일 더 잘 할 궁리 하자고 축제를 연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 무엇으로 노는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노는 일은 곧 풍성하게 먹고 마시는 일을 뜻한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며 가급적 기억하지 못 할 정도로 취한 뒤에라야 ‘거 참 걸지게 놀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좀 구색을 제대로 갖추려 하면 아무래도 노래방도 들르고 나아가 더 은밀한 술자리가 덤으로 한 번 정도 곁들여져야 한다. 굳이 철을 가려 자연풍광과 함께 놀 때라면 거기가 계곡이든 산이든 가리지 않고 얼마나 맛있는 음식에 독한 술을 많이 먹고 얼마나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는가가 기준이 된다.

 아무래도 우리는 점점 더 독하게 논다. 악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웃어 대지만 그래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왜 그런가? 소리를 사랑하고 철철이 음주가무를 즐기며 풍류와 더불어 지내 왔다는 이 도시의 노는 판이 대체 왜 이리 부실하고 허전한가?

 이유는 명쾌하다. 더불어 놀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밝은 곳에서 놀지 않아서 그렇다. 잘 해야 가족들끼리, 오래 된 친구들끼리, 또는 직장동료나 거래처 사람들하고, 삽시간에 전투하듯 마셔대고, 각자 자신들의 언어로 마구 떠들다가 음침한 지하실에서 마이크를 붙들고 한풀이하듯이 악을 써 대는 방식으로는, 놀이가 진정한 놀이일 리 없다. 놀이가 진정 재생산으로 이어지기는 더욱 힘들다. 역설적이지만, 드라마와 쑈, 인터넷과 영화 등, 어느 선진국보다도 앞서간다는 바로 그것들도 일그러진 놀이문화를 조장하는 데 한 몫 단단히 한다. 드라마, 쑈, 영화, 게임 속의 인물들과는 언제라도 고락을 같이 하며 때론 펑펑 울고 까르르 웃으며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아마도 그러느라고, 정작 앞집 사는 이들, 사무실의 동료들에게는 지극히 무심하다. 직접 사람을 만나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의 얼굴을 마주 대하며 사람과 어울려 노는 일에는 시간도 열정도 나눠 주려 하지 않는다. 밀실(컴퓨터모니터를 포함한)에서의 익명적, 간접적, 개별적 놀이에 너무 익숙한 것이다.

 축제는 넓은 광장에서의 실명적(實名的), 직접적, 공동체적 놀이를 기본으로 한다. 노는 일에 낯설고 소홀하거나 그다지 함께 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서의 축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소문난 축제의 도시들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의 노는 모습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아래에서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춤을 추고, 한 밤중의 느닷없는 찬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길이 뛰며 논다. 술은 낮부터 마시지만 취해 흥청거리지 않고 잘 논다. 수만 명이 모여 하루 종일 뛰고 노는 도심 한 복판의 공원에 전투경찰 단 한 소대 배치하지 않아도 상주 참사 같은 것 일어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스타에 자신의 자아를 저당 잡혀가면서까지 놀지 않기 때문이다. 스타에 기대어서 놀지 않고 스스로 잘 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노래방, 술집 러브호텔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지만, 이 도시는 단체 관광객이 200명만 넘어도 받아들일 호텔이 없는, 해외는 그만 두고라도 국내의 수학여행단을 유치하는 일마저 숙소가 없어서 꿈도 못 꾸는 도시이다. 웬만한 인근국가에서 인천공항에 도달하는 시간보다 공항에서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훨씬 더 긴, 국내 최고의 심리적 오지이다. 상투적 볼거리, 접근성, 편의시설로 승부할 도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즉 이제 무엇으로 전통도시를, 문화 시대를, 축제를 이야기할 것인가? 진정 절박한 일은 주민들의 노는 물을 바꾸는 일이다. 다른 어느 도시도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스스로의 놀이를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과 이웃들의 놀이를, 또 낯선 이들과도 흔쾌히 어울려 노는 놀이를, 밝은 하늘 아래에서 아이들, 노인들과 같이 노는 놀이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또한 진정 오래 된 ‘소리 도시’의 미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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