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찬가
4월의 찬가
  • 진봉헌
  • 승인 2006.04.1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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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이면 오르는 산길이 4월이 되면서 나를 환희에 들뜨게 한다. 겨우내 죽은 듯이 서 있던 나무들의 가지 사이사이에 어린 연두색 잎들이 갓난아기 손처럼 움츠려 고개를 내미는 모습에 경외감을 느낀다. 특히 처음 그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너무나 반가워 숨이 멎을 것 같은 벅찬 감동에 휩싸인다. 그러다가 조금씩 산천이 녹색의 세상으로 변해가면 내 자신의 몸에도 조금씩 생명의 원기가 차오른다. 그러던 어느 날 온통 녹색의 세상으로 바뀌면 환희의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조금 더 자연에 익숙한 사람들은 훨씬 그 이전부터 봄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메마르고 황량한 겨울 한복판에도 나무에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고 어느새 마른 가지에서 새 가지들이 가지치고 있었고 가지마다에는 새순과 꽃망울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정월 초하루를 신춘이라고 불렀다.

4월은 또한, 나에게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새롭게 고시공부를 시작하던 날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유일한 격려와 위안으로 항상 같이 있어 주었던 서울 성신여대 뒷산의 숲들을 잊을 수 없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 2차 시험에 합격했던 나는 그 전 해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학생시위 경력자 면접 탈락 방침으로 인해 30여명과 함께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실시된 면접에서 또 다시 10여명과 함께 탈락했다. 그중에는 현재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인섭씨도 포함되어 있다. 오갈 데 없게 된 나는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심하고 몇 차례 입사시험에서 낙방한 후 쌍용양회에 입사하여 그룹 종합조정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3년 3개월을 근무하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억울하여 다시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참으로 무모한 도박이었다. 학생시위 경력자 면접 탈락 방침도 바뀌지 않았고, 사법시험에 떨어지면 취업연령도 지나 재취업할 길도 막혀 있었다. 거기다가 결혼하여 아들까지 하나 둔 처지에 고시공부를 뒷바라지 해 줄 사람도 없었다. 대학시절부터 3~4년간 했던 고시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것도 지겨웠다. 그 때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해 주었던 것이 하루에 한 두시간씩 하는 성신여대 뒷산의 등산이었다.

처음에는 한 겨울이었다. 메마르고 황량한 숲의 모습은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봄이 되면서 새잎이 돋고 조금씩 녹색의 세상이 되어가는 모습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켜보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 1년 6개월 만에 제28회 사법시험 2차 시험에 합격한 나는 끝이 없는 터널을 빠져 나온 것 같은 감격을 맛보았다. 모교 총장님과 지역신문까지 나서서 도와준 덕분에 면접시험도 통과하였다.

4월이 오면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추억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분들도 있고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봄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풍성한 가을의 수확을 위하여 조금만 더 참고 견디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틈틈이 봄의 정취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자연은 힘들고 어려운 여러분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

<전주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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