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도산십이곡
14. 도산십이곡
  • 이동희
  • 승인 2006.04.1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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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불식(自彊不息)하는 행복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어찌하여 주야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 상청하리라.

 

 -이황(1501~1570) ‘도산십이곡’ 중 후 6곡의 다섯째

 

 고전『역경(易經)』에 ‘천행건군자이자강불식(天行健君子以自强不息)’이 보인다. 여기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은 ‘오직 최선을 다하여 힘쓰고 가다듬어 쉬지 아니하며 수양(修養)에 힘을 기울여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구절에 있는 ‘천체의 운행은 건실하다[天行健]. 군자는 그것으로써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君子以自彊不息].’는 구절에 자강불식의 이유와 당위성이 천명되어 있음을 지나쳐 보아서는 안 된다. 천체인 대자연의 변화는 정상적이며 어긋남이 없다. 매우 높은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을 가졌거나 높은 관직에 있는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지혜와 품성, 덕성을 닦는데 힘써야 한다는, 매우 의의가 깊은 말이다.

 퇴계(退溪) 선생께서『도산십이곡』이라는 제목으로 남긴 시정신도 여기에서 멀지 않다. 청산(靑山)은 시간의 흐름에도 변치 않고 영원히 푸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하여 변치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청산인들 어찌 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본다면 청산은 결코 변하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산새가 교태를 부리는 봄이 올망정 청산은 스스로 지란(芝蘭)을 품어 기르며 산의 향기를 지킨다. 여름이 무성하게 번식하여 거느린 식솔로 자신의 모습을 가린다할지라도 청산은 스스로 하늘 무너지는 뇌성(雷聲)마저도 가슴에 품어 메아리를 만들 줄 안다. 농익은 젊은 아낙이 성장(盛裝)한 모습으로 청산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가을이 온다할지라도 청산은 말없이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길짐승 날짐승들에게 겨울을 보낼 서식처를 제공하지 않던가!

 그러니 청산이 만고(萬古)에 푸르른 의지와 줄기찬 생명력으로 만물을 품어 기르듯이, 우리도 만고에 이르도록 헛되이 쉬지 말고 면학정진-사람공부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에 의탁하거나 혹은 자연의 일부가 되는 사람됨의 분명한 도리다. 청산이 잠시도 쉬지 않고 만고에 푸르른 기상[天行健]을 떨치듯이, 사람공부에 전념하는 사람들도 마땅히 쉬지 말고 스스로 푸르른 기상[常靑-自彊不息]을 빚어야 한다.

 청산뿐이겠는가? 흐르는 물도 마찬가지다. 흐르는 물이 잠시나마 무료하게 스스로 흐름을 멈춘 적이 있던가? 흐르는 물은 흘러가야 한다. 물[水]이 가는[去] 길의 뜻을 합하여 회의문자 법(法)을 낳았듯이, 물은 흘러가야 물이다. 그러므로 흐르지 않는 물은 물이 아니며 살아 있는 자연의 법이 아니다. 물은 밤[夜]에도 흐르고 낮[晝]에도 흐른다.

 정작 흐르는 것의 본체는 물이 아니다. 유수(流水)로 비유된 시간이다. 흐르지 않는 물은 마침내 썩어 어떤 생명작용을 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고야 말듯이, 흐르지 않는 시간도 죽어 생명작용을 할 수 없다. 살아 있는 자연의 이법에 의하면 물이 쉬지 않고 흘러야 물이듯이, 사람에게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야 비로소 시간이고, 그 흐르는 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사람다운 심법(心法)에 충실하게 된다. 인생을 운행하는 공부도 멈춤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단호하게 정진하려는 마음가짐이 바로 종장에 귀결되었다.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萬古) 상청(常靑)하리라.’가 그것이다. 청산이 쉬지 않고 생명 작용을 하듯이, 시간이 쉬지 않고 자연의 이법을 말하듯이, 우리도-군자(사람다운 사람)가 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자강불식해야 한다. 천지를 건실하게 운행하는 자연처럼 우리[인간]도 쉬지 않고 스스로 정진해야 한다. 자강불식(自彊不息)이야말로 천지를 운행하는 생명작용의 본체요,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행복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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