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迂廻) 언어를 개발하자
우회(迂廻) 언어를 개발하자
  • 서영복
  • 승인 2006.04.19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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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흙비 섞어 치며 이 봄날이 가고 있다. 지방선거철, 좋고 좋은 말들로 곳곳이 성찬이다. 날선 막말들도 여기저기 난무한다. 여야 모두 알맹이 없는 폭로와 호언장담, 용두사미 식 ‘공천비리 자정(自淨)’ 다짐만 일삼고 있다고 언론은 질타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매니페스토 운동’이다 ‘공약 모니터링’이다, 이름과 내용을 조금씩 달리 하는 시민 감시운동들도 활발하다. 서울시장 입지자들은 ‘보라색’ ‘녹색’ 이미지 정치에 골몰하고 있다. 일종의 유행이요 패션이요 브랜드라 할 만한 일들에, 다들 바쁘기만 하다.

‘본질 소홀, 포장 치중’은 그렇다 쳐도, 누구라 할 것 없이 말들을 너무 함부로 한다. 언어란 게, 통상적인 말[言]과 판단작용이 가미된 말[語]로 나뉜다고도 한다. 그 말이 도(度)를 넘어 도(道)를 잃고 있다. 하다못해, 열차 간 휴대폰들도 제 목소리 큰 줄을 모른다.

도(度) 넘어 도(道) 잃은 언어

낙엽 하나로 가을을 짐작하듯, 자연에는 언어 이상의 현묘한 메시지가 있다. ‘소나무 많은 산은 양기가 세고, 참나무 많은 산은 음기가 세다’던가? 동물들의 영역 표시 같은 것도 있다. 이 같은 자연계의 비의는 이미 인간사의 언어 이상의 언어 세계이니 그렇다 치자.

『묵자』에, 말을 함에는 세 가지 법도가 있다 했다. ‘선인들의 가르침에 부합되게 말하라, 듣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말하라, 실천방도를 세워 말하라[有考之者, 有原之者, 有用之者].’는 게 골자다. 스님들은 ‘묵언수행’을 한다. ‘판토마임’이라는 예술 장르가 있기도 하다.

‘조용히 해 달라!’는 소리가 더 클 때도 있다. 중동의 이슬람권에서는 이럴 때 엄지 검지 중지를 모아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낸다고 한다. 중국 식당에서는 담화 도중 음식 서빙을 받을 경우,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식탁을 똑똑 두드리며 고맙다는 뜻을 전한다고도 한다.

참여정부 3년의 ‘탈 권위’ 사례로, 임명장 수여식의 변화를 들기도 한다. 대통령 앞에서 허리를 과도하게 못 숙이게끔 1.5m였던 대통령과 ‘대인 거리’를 60cm로 줄였다는 거다. 상대와 맞닿을 수 있는 60cm, 공식업무 대화거리 1.5m의 차이 하나로 많은 뜻을 전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인간에게는, 은근한 몸짓언어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언어생활 규범이 적잖았지 싶다. 문제는 언어표현의 즉물적 과잉대응이 날로 늘어난다는 것일 게다. 인간은 누구나 가해자요 피해자라 하지만. 말로써 주고받는 상처와 소모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말보다 눈치코치, 손짓 발짓?

심리학자에 따르면, 표정과 몸짓은 언어보다 더 강하게 친밀함?거부감?노여움을 전하는 도구일 수도 있다. 그렇긴 해도, 요즘 같은 독설공방보다는 이심전심이나 우회적인 표현이 확실히 낫다. 차라리 ‘판토마임 협약’이라도 맺어 언어생활의 ‘웰빙’을 추구하고 싶다.

신세대들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 또한 현명할 듯하다. 그들은 인터넷 메신저 대화에서, 문자 대신 ‘이모티콘’ 같은 이미지나 기호로 감정을 전달한다. 자신의 다양한 감정을 압축하여 완곡하고 조용하게 드러낸다. 더욱 새롭고 바람직한 ‘소통’ 방식의 개발 확산을 고대한다.

기성세대들도 ‘상대를 움직이는 90%는 언어 아닌 비언어적 요소’라는 말을 새겨 소통과 설득을 향한 자세를 가다듬어 갔으면 한다. 정치인들도 ‘악수만 해봐도 지지여부를 안다’고 하기보다, 유권자의 침묵 속 속내와 바람을 새겨 감정과 이상의 공유에 힘쓰기 바란다.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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