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위한 1분
귀신을 위한 1분
  • 이세리
  • 승인 2006.04.20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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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못하는 영화가 있다.

 전주영상위원회에 들어와서 아무 것도 모르고 헤매며 다닐 때 만난 영화가 한편 있다.

 바로 김상진 감독의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이다.

 필자는 김상진 감독 때문에 영화를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김상진 감독의 광팬이다.

 그런 감독을 처음 봤을 때 기쁨이란… 유명 연예인을 만났을 때보다 더 흥분되고 기뻤다.

 꼭 감독 때문만은 아니어도 필자에게 ‘귀신이 산다’는 아주 특별한 의미의 작품이다.

 바로 ‘국도통제’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관례가 없던 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일은 그때 당시 영화사 홍보 전면에 사용될 정도로 큰 이슈거리이기도 했다.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를 보면 신혼여행을 가던 장서희와 장현성씨가 추락사고를 겪는 산비탈길이 있다.

 제작팀은 이 장소를 찾기 위해 전국의 산길을 다 뒤져야 했다. 물론 필자도 전라북도의 산줄기를 모두 찾아다녔고.

 이 장소라는 것이 그냥 비탈길이면 좋으련만 사고처리 장면까지 연결을 해야 해서 밑에 큰 공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모두들 더 애를 먹기도 했다. 그나마 원작에는 비행기 추락장면이었던 것을 감독이 많이 양보 해준거라 하니 그나마 감사히 알고 찾는 수밖에....

 거제도에서 촬영을 끝내고 밤새 잠도 못 자고 확인헌팅을 하러 오는 스텝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제작부장은 한 달도 넘게 촬영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산길만 올라 다니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안개 자욱하던 날, 이제 모두 지친 발걸음으로 전주를 떠나려던 그 순간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에서라도 찾기만 해. 내가 드러누워서라도 막을 테니까”라고 외쳐버렸다. 무슨 오기로 그랬는지...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통제가 수월할 듯한 지방도만 찾던 헌팅계획이 전면수정 되었고 그렇게 찾은 곳이 국도 26번 보룡제(전주-진안 구간)이다.

 이거 벌려는 놓았는데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영화촬영을 위해 국도를 점유하거나 통제한 적이 없다는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사람은 문제에 부딪힐 수록 자신도 모르게 강해진다. 갑자기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이기에 내가 꼭 해내고야 말리라 하는 의욕이 생겼다.

 전주국도유지관리사무소와 완주경찰서를 오가며 몇 번의 설득과 조언을 구한 덕에 우리는 여러 상황들을 조합해나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촬영을 준비했다. 이 길고 긴 과정은 지면에서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헌팅기간 2달. 촬영준비기간 2달. 총 넉 달이라는 시간을 소요해 영화의 1분을 만들어냈다.

 ‘귀신이 산다’의 시사회가 있던 날, 버스 추락씬을 보며 우리 직원들 모두가 박수를 쳐주었다. 그간의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다.

 처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눈물도 흘려보았다. 첩첩산중으로 이루어진 행정을 뚫기 위해 수험생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이 1분으로 나타난 것이다. 아마 내가 숨을 쉬는 한 ‘귀신이 산다’를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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