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15.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 이동희
  • 승인 2006.04.24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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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1502?~1540?)「동짓달 기나긴 밤을」전문

 

 황진이는 문학을 인생처럼, 인생을 문학처럼 살았던, 몇 안 되는 시인다운 시인이었다.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지루하다.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마음은 아득하다. 모든 ‘그리움’은 ‘기다림’이 변형된 말이다. 기다림이 변하여 그리움이 되었다. 기다림은 만남을 전제한다. 만남은 관념적 사랑이 구체성을 띄는 상황이다.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기다림이 바로 그리움이다. 그러니 기다림이 낳은 마음이름이다.

 그 간절한 그리움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한 해 중에서 가장 길고 어두우며 가장 추운 계절로 ‘동짓달’만한 것이 없다. 삭풍은 저 혼자서 겨울을 우는 것 같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 겨울바람은 그냥 울지 않는다. 혼자서 기다리는 삭막한 서러움은 길고도 어두며 가혹하게 추위를 탄다. 그 한 대목, 그 시리고도 절망적인 한 겨울-사랑이 결핍된 시간을 한 토막 내고 싶은 심정이야 그리워해 본 사람은 안다. 사랑해 본 사람만이 어두운 그리움의 절망을 실감할 수 있다.

 두루마기자락을 쓸며 올 것 같은 임의 발소리, 헛기침하며 토방에 올라설 것 같은 임의 목소리, 보름달 같은 등경으로 방문을 열 것 같은 임의 얼굴은 끝내 나타나지 않고, 영원히 새지 않을 것 같은, 어두운 절망으로 겨울밤은 깊어만 가고 있다. 사랑하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며 저 홀로 얼어가고 있다. 독수공방 찬 바람만 밤을 지키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그 지루한 기다림, 칠흑 같은 시간, 절망의 장강을 어찌할 것인가? 당연히 작단(斫斷-베고 잘라서 끊어내다)을 내야 한다. 마침내 끊어 없애 버려야 한다. 시간의 축지법, 사랑의 열망은 마침내 그 시간마저도 뭉텅 작단하여 기다림을 단축시키고, 그리움을 압축시켜서 사랑의 구체성인 ‘만남’을 앞당긴다. 신비한 사랑의 축지법, 시간의 축지법으로 요지부동 앙탈을 부리는 절망스런 동짓달 어둠마저 굴복시키고야 만다.

 이 밉지만 아주 버릴 수는 없는, 이 춥지만 그냥 잊을 수는 없는, 작단을 내 버린 어두운 시간들-그리움의 잔해들을 어찌할 것인가? 어느 헛간. 어느 마음 구석에 담아둘 것인가? 어느 장롱 어느 벌판에 버려둘 것인가? 어누 모퉁이 어느 허공에 날려버릴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리움의 잔해를 그냥 버려둘 수는 없다. 사랑은 물론 기쁨이요 웃음이요 환희다. 그러나 기쁜 사랑은 언제나 슬픈 사랑을 먹고 자란 떡잎이요, 사랑 웃음은 짜디짠 사랑 눈물에서 자란 나무이며, 사랑 환희는 절망을 지새우고 피우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싹이요 나무요 꽃을 어디 둘 것인가? 마땅히 봄바람 이불 아래 두어야 한다. 그곳 말고 사랑의 구체성이 있을 곳은 없다. 누가 있어 이 사랑의 보랏빛 감성마저 이렇게 켜켜이, 차곡차곡 갈무리해 둘 줄 알았던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갈무리 해 둔 그리움의 시간들, 기다림의 아픔들이 펼쳐지는 곳은 그 ‘어른님이 오신 날 밤’이다. 이 때 비로소 슬픈 사랑이 굽이굽이 펼쳐져 아름다운 대화의 장강을 이룬다. 이 때 비로소 눈물 사랑이 자락자락 펼쳐져 사랑의 숲을 이룬다. 이 때 비로소 어두운 절망이 송이송이 사랑의 꽃을 피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은, 짧기로 겨룰 자가 없는 봄밤에 굴복한다. 그 길고 긴 그리움의 시간을 돌아오느라 ‘얼어버린[凍]임’을 녹여내는 만리장성을 쌓으며 ‘어루어진[交]’ 사랑의 계절을 피우는 것이다. 아, 누가 있어 일찍이 사람의 일 겨울사랑을, 저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일 봄사랑으로 다시 꽃피게 할 수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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