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보내며
4월을 보내며
  • 김진
  • 승인 2006.04.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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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꽃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봄이 다가옴을 전하는 목련은 생태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백목련은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 하여 영춘화라고 하고, 자목련은 봄이 끝나는 때에 핀다하여 망춘화라고 한다. 또 자생종인 산목련은 백목련·자목련과는 달리 잎이 피고 난 후에 꽃봉오리가 맺는데 꽃의 모양과 향기가 좋아 목란꽃이라고 불리 운다. 이러한 목련과 함께 수줍게 찾아 온 봄이 올망졸망한 매화와, 연분홍 물이 곱게 오른 벚꽃과 더불어 상춘객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꽃구경을 할 요량으로 시내를 벗어나자면 도로가에 흐드러진 개나리의 선명한 때깔 또한 봄빛을 한껏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주 강풍경보와 함께 몰아친 모진 비에 봄꽃은 거의 지고 없지만, 고원지대인 탓에 개화시기가 늦은 마이산의 벚꽃은 이제 만개하여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러한 봄꽃들을 싫어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꽃이 질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싫어진다는 이는 의외로 많다. 하기야 며칠을 못가 퇴색하여 쪼그라들어 버린 유백색의 목련과 개화시기와 맞물려 내려치는 봄비와 꽃샘추위에 쉬이 잎을 떨쳐, 젖은 채로 길바닥에 붙어버린 꽃잎들을 보기 좋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원래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는 법이다. 살랑대던 봄기운을 안고 작은 소망을 담아내던 화사한 꽃들의 자리를 새순들이 매김 하고 나서야 ‘화무십일홍이라더니 진짜 열흘을 못가네’하며 지는 꽃을 아쉬워한다. 우리가 사는 이치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봐야 그때가 아름다웠다든지, 그때가 정말 힘든 고비였다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진짜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는가!

 때는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이다 싶은 곳이면 어김없이 선거사무소가 들어서있고, 그곳에는 건물 벽을 다 채울 만큼의 큰 선전용현수막이 걸려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선거에 동참할 수 없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동안 도내의 각 정당들이 벌여 온 경선작업이 얼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까지의 당내 후보자들 간 경쟁을 마치고 이젠 타 정당과 무소속후보들과의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꿈을 접어야하는 예비후보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잔인한 4월이 되었을 것이다. 경선탈락은 예비후보자 본인들에게도 큰 충격이겠지만 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내가 지지하거나 관심을 갖던 후보자가 탈락하였을 때, 최선이 아닌 차선의 다른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사실은 유권자에게도 적잖이 상실감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4월의 끝 무렵에 이르면서 나라 안팎이 여러모로 혼란스럽다. 환율이 날로 떨어져 수출채산성이 악화되고, 급기야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가 하면 국제유가는 90불을 향하여 달리고,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현실을 외면한 채 마치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양상도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추악한 머니게임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재벌기업과 론스타는 진정성이 의심되는 사회발전기부금으로 여론을 무마하려 하고 있고, 5·31지방선거를 겨냥한 치졸한 폭로전과 정쟁은 국민들 마음속에 간직한 희망마저 지우고 있다. 참여정부의 개혁과 풀뿌리민주주의를 지켜보며 국민들이 느끼는 4월은 그저 지치고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4월은 잔인한 달… 이맘때쯤이면 으레 한두 번 듣는 구절이다. T.S 엘리엇은 그의 長詩 황무지에서 4월은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고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 때문에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계절의 순환과정에서 봄이 되어 다시 버거운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와 시련을 묘사 것이다.

사람의 일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시작 해야만 또다시 끝이 있기에. 마무리 되어가는 당내의 경선도, 다가올 지방선거의 결과도, 그리고 널뛰듯 요동치는 국제유가나 환율도, 또 지금 스스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도 모두가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반드시 끝이 있고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4월이 가기 전에 다시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4월도 결코 잔인한 달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어본다.

<경희대 무역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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