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생활양식이 온축된 사투리, 문화재로 지정해야
17. 생활양식이 온축된 사투리, 문화재로 지정해야
  • 이원희
  • 승인 2006.05.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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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청은 전북 무주 지전, 익산 함라 등에 있는 마을의 옛 돌담길을 공식 문화재로 지정했다.

 향토적 서정성이 담긴 돌담. 건축미학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유년의 정서가 배여 있는 돌담이 최근 사라지고 있어 보존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돌담의 경우에서 보듯이, 문화재 지정은 역사적, 문화적 보존가치를 우선에 둔다. 새로움의 추구 결과 라이프타임이 갈수록 짧아지는 변화무쌍한 속도의 시대에 옛것이 차츰 사라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지 모른다. 낡은 것이 새로움에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순리다. 하지만 낡은 것 속에 미래를 여는 열쇠가 들어있는 법이다. 온고지신이나 법고창신은 이 점을 강조한 말이 아니던가. 세월에 밀려 가뭇없이 사라질지 모를 옛것은 건물이나 돌담 혹은 무형의 문화예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구수하고 질펀한 맛에 말의 힘과 재미를 주는 사투리는 생활양식이 온전히 스며 있는 그 지역만의 독특한 언어다. 오랜 삶의 경험에서 온축된 언어. 사투리는 언어공동체끼리 친연성을 갖게 하는 동시에 지역공동체 문화를 잉태하는 둥지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 전지구적으로 생활양식 즉 문화가 빠른 속도로 표준화되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시대다.

 한 예로, 영어의 세계화 현상은 비단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맥몽드(mac-monde) 시대라 일컫는 지금. 맥도날도에서 배를 채우고, 맥킨토시에서 머리를 채운다.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획일화된 삶의 패턴. 영어적 사고와 문화가 세계문화의 표준이 된 셈이다. 획일화된 문화는 삶을 경직시키고 인간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의 에너지를 약화시킨다. 바벨탑의 언어 분화는 다양한 문화를 창출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우리의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독특한 지역 사투리는 지역문화를 일구는 근간이다. 언어화되지 않는 문화가 어디 있으랴.

 몇 군데의 지역축제에서 사투리에 관심을 갖고 경연대회를 갖는 경우를 보았다. 그러나 단순히 말의 유희를 즐기는 프로그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방송, 교육, 통신, 교통의 발달로 사투리는 표준어에 밀려 사멸될 위기에 놓여 있다. 사투리는 보존되어야 한다. 아울러 그 보존은 심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재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전라도의 질펀한 사투리가 없었던들 어찌 월매의 걸쭉한 육담을 춘향전에서 맛볼 수 있으랴. 또한 전라도 사투리가 아닌 판소리의 신명은 생각이나 할 수 있으랴. 문화유산은 정신의 유산이요 생활양식의 유산이다. 언어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정신과 생활양식의 근간이자 출발이다. 사투리의 문화재 지정은 로컬리즘 문화의 근간을 존중하는 행위이면서 글로벌 문화의 기층을 확보하는 일이다. 아울러 사투리 보존은 문화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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