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 꽃들의 왕, 모란과 소치 허련 화백
18 - 꽃들의 왕, 모란과 소치 허련 화백
  • 이원희
  • 승인 2006.05.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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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왕이 오월이라면 꽃들의 왕은 단연 모란이다. 오월의 꽃 가운데 가장 탐스러운 꽃이 모란이다. 모란이 문헌상 최초로 보이는 건, 삼국사기 열전 ‘설총조’이다. 설총은 ‘화왕계’를 지어 임금의 길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 화왕, 즉 꽃들의 왕으로 묘사된 게 바로 모란이다. 송나라 때 구양수는 ‘낙양모란기’(洛陽牧丹記)에서 ‘모란에 이르러서는 굳이 꽃이름을 말하지 아니하고 바로 꽃이라고 한다. 그 뜻은 천하의 진정한 꽃은 오로지 모란뿐이다’라며 모란을 극찬하고 있다.

 조선 후기, 모란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가 두 사람 있다. 소치 허련(1809-1892)과 남계우다.

 허련은 모란을 지극히 사랑하여 많은 모란도를 남겼다. ‘허모란’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이니 허련이 모란을 얼마나 즐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대부 화가인 남계우는 모란과 나비가 어울리는 모습을 사실적이며 정교하게 표현한 화가다. 허련이 모란을 즐겨 다뤘다면, 남계우는 나비를 그림의 주요 소재로 다뤘다. 남계우를 ‘남나비’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련은 호가 소치(小痴), 자는 마힐(摩詰)이다. 허련의 호와 자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허련은 중국의 남종화를 신봉한 나머지 원말 사대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의 호 대치(大痴)와 상통하게 자신의 호를 소치(小痴)라 했고, 자는 남종화의 시조인 당(唐)의 왕유(王維)의 자를 그대로 따라 마힐(摩詰)이라 했다. 그만큼 허련은 남종화의 화풍을 숭상했다. 조선 후기 남종화를 대표하는 허련의 위치는 바로 그의 호와 자를 붙이게 된 일화에서도 극명히 알 수 있다. 허련은 해남 윤선도 고택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통해 전통 화법을 익히고 대흥사의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서화 공부를 하게 된다. 그의 스승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의 작품은 뛰어나다.

 동양화는 사물을 우화적으로 표현해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모란, 바위, 고양이 등 사물이 들어 있는 동양화는 삶의 소원을 담고 있는 문화코드인 셈이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은 화훼도, 화조도, 병풍, 자기 등에서 주요 소재로 다뤄진다. 허련의 경우 색채 없이 묵으로만 모란을 그린 ‘묵모란도’가 유명하다. 부귀를 뜻하는 모란을 묵색으로 그린 허련의 생각은 무엇일까. 누구나 부귀를 지향하는 ‘색의 세계’에서 소치 허련은 ‘정신의 부귀’를 말하고자 붉고 화려한 모란을 묵색으로만 처리하지 않았을까. 철쭉꽃 진 자리에 뻐꾸기가 울음소리를 풀어내는 오월. 호암미술관에서는 모란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그 가운데 유독 허련의 ‘묵모란도’가 시야의 중앙에 들어오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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