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란 무엇인가
‘수’란 무엇인가
  • 김인수
  • 승인 2006.06.14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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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흔히 ‘수’라고 하면 누구나 1, 2, 3, ...을 우선 머리에 떠올린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가 ‘수란 무엇인가?’하고 물어오면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대답하기는 곤란하다.

 수의 세계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 세계가 아니고, ‘그림자’와 같은 기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계산대에 앉아 있는 아가씨는 내가 무슨 물건을 샀느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는 것은 물건의 가격과 개수이다. 우리는 여기서 수가 지닌 중요한 특징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는 수가 사물의 물리적인 성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다만 사물과 연관된 특별한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점에서 과자를 사든 생선을 사든 상관없이 계산대의 아가씨는 거기에 붙어있는 숫자(가격)만 보고 계산기를 두드리기만 하면 된다. 둘째는 수는 아주 편리한 기호라는 점이다. 즉, 이 기호(수)를 써서 연산을 할 수가 있다.

 그러면 처음에 수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아마 인간이 가축이나 곡식 등의 물건을 소유하고 교환할 때부터 ‘수’에 대한 지식이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중에서도 하나, 둘, 셋, ...으로 셈하는 수가 맨 먼저 나타났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10 진 위치적 기수법은 인도에서 발명되어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인도-아라비아 식 기수법’이라 한다.

 0의 탄생지는 인도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10 진 위치적 기수법을 만들어 낸 것도 역시 인도인이다. 물론 그들이 사용한 기수법은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위치적 기수법의 원리가 확립되어감에 따라 빈 자리를 나타내는 기호가 필요해진 것은 당연한 이치였던 것이다.

 기원전 2세기경에는 불교에서 쓰는 말인 공(空)을 써서 지금의 0 을 대신하였다. 그러다가 3, 4세기경에는 점을 찍어서 나타냈으며 7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지금의 0 이 등장하였다. 0 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기호가 제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이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인도인이 발명한 숫자 1에서 9까지의 기호와 0 은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갔는데 15세기 말쯤에야 비로소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 인도식 기수법이 순조롭게 전해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들의 유입은 그 이질감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0 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어떤 자리가 빈 자리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자리를 그냥 비워 두었다. 예를 들면 102는 1 2로 나타내었다. 그런데 1 2를 12로 볼 것인지 102로 볼 것인지 사람에 따라 혼란스러울 수 있는데, 차용증 같은 것을 작성할 때는 각 자리마다 명칭을 붙임으로써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

 즉, 일, 십, 백, 천, 만, 억, 조, ...등의 단위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0 이 없는 시대에는 이러한 편법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각 자리마다 이름을 무한정 붙여 나갈 수는 없다. 무한한 자연수에 일일이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그것을 일일이 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헛수고에 비하면, 예를 들어 억은 0 을 8개 붙여 표시한 것처럼 필요한 만큼 0 을 붙여 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대단히 편리한 것이다. 자연수는 모두 어떤 물체에 대응시킬 수 있지만 0 만은 그럴 수가 없다. 굳이 표현한다면 0 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대응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누구나 0 을 '수'로 생각하는 것은 습관 탓이다.

 유치원 때부터 줄곧 기호로서의 0 을 보아 온 것이 습관이 되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수로서 정식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감승제, 즉 사칙연산이 성립해야 하는데, 0 은 이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 예를 들어 0+0=0, 0+a=a, 0*a=0을 찾아냄으로써 수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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