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는 세종대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세종로라는 명칭은 석연치가 않다. 세종대왕과 관련이 별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아전인수격으로 해명한다면 세종문화회관이 육중하게 버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설 문화회관의 이름을 따서 거리의 이름을 붙일 리 만무하다. 백번 생각해 본다면, 일제 이후 세종로 출발점에 중앙청이 있어, 대통령이 조선의 성군인 세종의 치적을 거울 삼으라는 의미로 이름을 그렇게 붙일 법하다. 그러나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 거리 이름은 그 장소와 관련된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거리는 문화가 숨 쉬는 역사의 얼굴이어야 한다. 그런데 세종로는 세종대왕이 없다. 프로이트는 없고 프로이트주의만 있듯이, 세종로에는 조선의 성군 세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공허한 이름만 남는 역사적 빈 공간이 되어버렸다.
세종로를 비껴 서쪽으로 약간 틀면 율곡로가, 남쪽으로는 사직로가 있다. 율곡로는 역사적인 인물을, 사직로는 옛날에 사직단이 있어서 거리 이름을 정했다. 이 경우도 일률적인 잣대가 없는 듯하다. 역사적인 인물을 거리의 이름으로 삼는 데는 그래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 숭상해야 할 역사적 인물이라 해서 특별한 연고도 없는 데다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정합성의 논리에서 어긋난다.
세종로의 상징은 광화문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장군의 동상이 기왕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어야 한다면, 차라리 ‘이순신의 거리’로 이름을 바꾸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서울의 대표적인 거리에 관련성이 없는 이름을 끌어오는 건 문화정신을 몰각한 행위다. 거리 이름 하나를 정하는 데도 과거의 현재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면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세계는 한 권의 책으로 존재한다고 했던가. 일상적으로 걷는 거리에서 옛 역사의 광휘로운 힘과 지혜를 읽어낼 수 있도록 도시가 책처럼 읽고 음미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싶다. 세종로의 의미를 묻는 외국인들과 세종로에서 세종대왕을 찾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줘야 할 지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