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의 신화
정상가족의 신화
  • 김흥주
  • 승인 2006.07.31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가구ㆍ주택부문 전수집계결과를 보면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무려 317만 7000여 가구다. 다섯 집 중 한 집 꼴이다. 더 놀라운 것은 증가율이다. 지난 2000년 조사 때에 비해 무려 42.5%나 늘어난 것이다. 세대 구성을 보더라도 놀라움은 계속된다. 2세대 가구에서 전형적인 핵가족이라 할 수 있는 ‘부부+자녀’가구의 구성비는 2.8% 감소한 반면 ‘한부모+자녀’의 경우는 21.9%나 증가하고 있다. 이혼 등의 여파일 게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가족위기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위기현상에 대한 진단과 해법의 차이에 있다. 한편에서는 가족위기의 원인을 변화 자체에서 찾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해결방법을 ‘전통’ 가족규범과 질서로의 회귀에서 찾고자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통가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오히려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고 진단하고, 새로운 가족 만들기에서 해법을 찾는다. 이른바 전통과 근대의 상이한 가족가치의 대충돌이다.

 가족가치의 충돌은 ‘무엇이 정상 가족인가’에 대한 신념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전통가족을 중시하는 측면에서는 ‘전통가족이 곧 정상가족(normal family)’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외부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정상적인’ 전통가족이 ‘문제가 있는’ 1인 가구나 한부모 가구로 변화함으로써 가족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로 인해 가족에 의한 아이와 노인부양이 방기되고, 가장의 권위가 약화되며, 가정교육이 약화되어 청소년의 일탈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전통 가족가치의 회복’이라는 도덕적 복고주의를 통해 현재의 가족위기를 헤쳐 나가고자 한다.

 근대 가족을 지지하는 측면에서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과 성 평등을 지향하는 근대 가족가치가 곧 ‘정상’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전통가족의 수직적 위계질서와 불평등성, 그리고 비민주성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의 확산이 가족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여성의 지위변화와 성별 역할분담 구조의 해체, 아동 및 노인부양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위기논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논쟁의 축이 ‘전통’과 ‘근대’의 가족가치 충돌이며, 그 핵심에는 우리 사회 특유의 가족주의 정서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가족부양체제에 대한 세대별, 성별 인식차이가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가치충돌은 곧 세대간에, 남성과 여성 간에 치열한 대결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둘째, 양측의 신념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가족위기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기보다 오로지 ‘자신의 가족가치’만을 강조하는 정치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양 편에게는 한 가지로 합의된 가족이 없다. 다만 서로가 강조하려는 ‘그들만의 가족’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가족이 정상이며, 상대가 선택한 가족은 언제나 비정상이다. 이 때문에 위기논쟁이 가족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이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보다는 정치적·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가족연대와 사회 전체의 결속력이 약화되는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다.

 가족의 정상성에 집착하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꼭 적용될 수 있는 기준만을 가지고 가족개념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은 ‘정형(定型)’으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언제나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연한 구성물일 뿐이다. 가족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으며, 다양한 가족들은 자신의 적극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관념 속에서 살아 숨쉬는 정상 가족은 현실 속에서는 신화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가족정치가 가능하며, 여기에서 사회적 합의에 의한 새로운 가족모형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