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빅4 마지막 뮤지컬 ‘미스 사이공’
26. 빅4 마지막 뮤지컬 ‘미스 사이공’
  • 이원희
  • 승인 2006.08.13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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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사랑만큼 뜨겁고 아득한 게 있을까. 열기와 냉기가 한꺼번에 가슴을 채우는 사랑. 태어나서 성장해 사랑을 나누고 그러다가 세월이 가면 늙고 병들어 죽는 인생의 휴먼 사이클에서 사랑은 누구나가 생의 정점을 차지한다. 그래서 예술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사랑을 다루고 있다. 특히 모든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전쟁상황에서의 사랑은 시리도록 아픈 꽃, 태어나지 말아야 할 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고 죽이는 전쟁판에서도 생명이 태어나듯, 피지 말아야 할 사랑도 폐허와 매캐한 화염 속에서 탄생한다. 비극의 꽃이.


 세계적인 뮤지컬 제작자인 캐머런 매킨토시의 빅4 뮤지컬 가운데 마지막 작품 ‘미스 사이공’이 국내 초유의 무대로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패러디한 베트남판 ‘나비부인’이다. 20c 마지막 이데올로기 전쟁인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미군 병사와 베트남 여자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남겨진 아이와 어긋난 약속이 빚은 슬픈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한 마디로 비극의 꽃을 다룬 작품이다. 원작 ‘나비부인’이 국제결혼의 비극성을 슬프고도 광활한 아리아로 보여주듯이, ‘미스 사이공’은 스펙타클과 감정을 터트리는 음악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무대와 3D 입체영상의 헬리콥터 장면 등이 관객의 눈을 포획하고, 모든 극적 줄거리를 말이 아닌 노래로 불러 관객의 가슴을 흔든다.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노래는 인간의 억압된 마음을 풀어내는 유일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바그너는 최고의 예술은 음악극이라 했던가. 빅4 뮤지컬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적으로 환타지를 다룬 반면,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현실논리를 취급했다는 점에서 보다 사실적인 관극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전쟁체험을 한 우리에게 베트남 전쟁은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이산가족과 혼혈아, 아버지가 부재한 남겨진 아이들의 슬픈 눈, 사랑과 쾌락의 흔적이 남겨진 상처는 인생의 덧으로 남고 약속의 언어는 위반되어 덧없는 구름처럼 없어져 버린 상황에서 나비부인의 선택이 죽음이듯, 미스 사이공 킴도 죽음으로 생을 종결한다.


 문학과 연극이 가공된 이야기로서 그 자체가 허구의 세계를 다루지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실성에 있는 게 아니라, 진실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삶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평범하고 하찮은 문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는가. 죽음보다 더 처절한 사랑이 내 안으로 들어와 ‘지금 여기’의 삶에 어떤 문양을 만들고 있는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한 장의 사진으로 촉발된 하나의 예술행위다. 관객이 무대와 교감하는 것은 시각적 화려함이나 가슴 울리는 멜로디나 가사만이 될 수 없다. 그건 작품이 말하고 있는 진실성을 자기 내면으로 불러들여 관객의 현재를 다숩게 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스 사이공’은 전쟁체험을 한 우리에게, 아니 아직 아물지 못한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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