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넘어 사람들
재 넘어 사람들
  • 김진
  • 승인 2006.08.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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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대한 작명은 예로부터 그곳에서 이루어졌던 흔적을 적어 지명으로 삼거나, 풍수를 살펴 앞으로 그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측하여 작명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지명은 오랜 세월을 두고 향토인들 사이에서 불려오면서 완전치 못한 구전이나 발음이 편한대로 전해지다 보니 많은 변천을 안게 된다. 그러한 전국의 지명들 중에 재밌고 이채로운 지명들을 찾아보자면 용인시 유방동, 산외면 목욕리, 풍산면 대가리, 대치면 주정리, 담양읍 객사리 등 민망한 지명들도 있고. 온양읍 발리, 용주면 손목리, 증평읍 연탄리, 일운면 망치리, 회북면 부수리 등 재밌는 지명들도 참으로 많다. 또한 먹거리를 지명으로 가진 곳도 많은데 진영읍 우동리, 의흥면 파전리, 웅상읍 소주리, 양서면 국수리, 도계읍 고사리, 수산면 계란리, 생일면 굴전리 등 다양한 먹거리의 이름과 같은 지명을 갖고 있는 곳도 상당하다.

 원래 지명이란 보수성이 강한 언어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영역이 바뀌고, 쓰이는 말과 글이 바뀔 때마다 지명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과거에는 풍수를 살펴 정해졌던 이름들도 최근 들어 행정구역의 변경에 따라 뒤바뀜을 거듭하여 시간이 갈수록 옛 지명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이곳저곳의 지명을 익히다보니 우리지역인 진안군에도 위에서 서술했던 이채로움을 훨씬 넘어서는 지명도 있다. 우선 富貴면 黃金리가 있다. 앞서 살펴본 마을의 지명들도 특이하긴 하지만 이곳처럼 한곳의 지명이 부귀에 황금이 따르는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참으로 감탄할 만한 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또 진안에서 무주로 넘어가다보면 코크니재(鼻大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6.25당시 미육군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이 낙오하여 산속을 헤매다가 36일 만인 8월25일에 적에게 포로가 된 곳으로 코가 큰 사람이 코크니재에서 포로가 됐다는 인연으로 유명하다. 그 코크니재도 이젠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무주 IC를 통해 진안을 찾는 사람들이 마이산에 앞서 먼저 놀라는 비경이 있다. 그게 바로 코크니재에서 바라보는 용담호인데, 열이면 열 모두가 탄성을 자아낸다. 이 깊은 산중에서 마치 다도해를 보는 것과 같은 장관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용이 요동치는 모양을 닮은 용담호를 고개위에서 내려보면 산봉우리들이 호수위에 떠올라 다도해의 섬들로 생각될 만큼의 비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용을 담을 호수라는 ‘용담‘의 지명 역시 700년 전인 고려시대 때부터 사용하였으니 선조들의 예지가 놀라울 뿐이다.

 본래 백제시대 당시 진안의 지명은 ‘난진아현’이다. 이는 이두의 훈역식 표기로써 전란의 본거지가 아니고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는 구전이 내려오기도 하며, 난진아(難珍阿)의 한자풀이를 하자면 보배로운 언덕과 낭떠러지로 막혀있는 고을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한 지명 덕인지는 알 수 없으나 6.25 당시에도 7월20일에 진안에서 경찰이 퇴각하고, 9월20일에 다시 수복하였으니 3년의 전란 중에 적치하는 2개월에 불과했다고 한다. ‘재’가 험했던 만큼 세상과의 왕래도 적었고, 길이 좋지 못했던 탓에 수없이 많은 세상의 험한 일들도 비켜 지나간 땅이 ‘진안’이다. 그래서 도시민들은 ‘곰티재’와 ‘모래재’가 굽이굽이 가파른 진안고원의 사람들을 일컬어 ‘재 넘어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처럼 조용하던 ‘재 넘어’가 지금은 전북의 탯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용담댐은 전주, 군산, 익산, 완주 등에 농업과 공업용수는 물론 식수까지도 책임지고 있고, 도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60.910ha)의 산림을 보유함으로써 도심의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는데 단연 으뜸가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가히 진안의 물과 바람이 전북의 탯줄이라 해도 식언(飾言)은 아닐 것이다. 전북의 탯줄을 이어주는 재 넘어 사람들에게 미약하지만 이 글을 통해서라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또 한 가지는 용담댐의 담수로 인한 수몰민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용담댐 수계관리와 관련하여 진안지역주민의 희생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형국을 지켜보며 물이든 바람이든 수혜를 입는 지역의 자치단체와 수자원공사에 한마디를 보태고 싶다. 꽃의 향기는 벌과 나비를 위한 것이라지만, 전북의 탯줄임을 자임하는 진안의 향기는 꼭 진안주민과 함께 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희대 무역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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