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라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라
  • 황석규
  • 승인 2006.08.20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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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1 지방선거가 끝나고 각 광역자치단체와 지방자치단체는 새로운 인사가 단행되며 지난 선거에서의 논공행상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 인사에 웃는 이들도 있고 씁쓸한 마음으로 지난 날의 자신의 선택에 좌절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단체장의 경우 꼭 챙겨야 할 인사가 100여명이고 이외에도 돌봐야 할 은인이 최소 500명을 넘는다는 풍문이 도니, 지방선거 이후 엽관주의적 인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안 봐도 당연하다.

자신의 단체장 입성에 도움을 준 이들을 챙기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자기 사람의 중용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런 엽관주의적 행태가 행정력 강화와 정책 추진에 있어 도움이 되기도 하나, 조직 내의 불화와 불신, 편 가르기와 같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음은 지난 역사에서 우린 수없이 목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 살리기”와 “주민 중심의 행정 구현”이라는 절대적 사안이 사인(私人)간의 인정에 의해 방해가 되서는 절대로 안 된다.

초한지의 두 영웅 유방과 항우는 극과 극의 캐릭터를 가진 인물로 자주 인용이 되며, 특히 유방의 인재등용과 부하에 대한 끊임없는 배신은 후세 사가들의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초나라 명문가의 자제이고 비범한 능력을 가진 항우에 비해, 한낱 시정잡배에 불과했던 유방의 곁에는 당대 최고의 책사와 경제전문가, 군사를 부리는 명장이 있었다. 바로 이들이 유명한 장량과 소하 한신으로 유방의 중국을 통일과 한나라 400년 역사의 기틀을 마련하는 숨은 영웅들이다.

비록 이들 참모들은 훗날 유방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황실의 힘을 지키기 위한 가신세력의 처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응당 배신이라는 단어가 지도자에게는 중요한 다른 능력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극악무도한 배신의 한 예로 휴수전투에서 항우에게 대패를 한 유방을 사로잡아 죽이지 않고 놓아준 항우측 장수 정공을 유방이 천하통일 후 자신의 주군을 배신한 행위를 문제삼아 제일 먼저 죽인다.

또한 팽월이라는 장수 역시 비슷한 이유로 죽임을 당해 그 시체는 젓갈로 만들어져 부하 장수들에게 나누어진다.

이들이 없었다면 유방의 천하통일도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대승적 차원의 배신이다.

아랫사람들에게는 철저한 충성을 요구할 수 있고, 자신이 과거에 진 빚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군자의 덕목은 예로 시작해, 의를 거울삼아 충으로 귀결되어야 하지만, 군주의 덕목은 자신이 다스려야 할 곳의 이득으로 시작해 발전으로 과정삼고 성과로 귀결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군자는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없고, 군주가 군자가 되고자 하면 나라의 힘이 약해진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부득불 배가 필요하지만 강을 건넌 뒤에는 말로 갈아타고 배는 버려야 함”이 세상이치다.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잔인하고 슬픈 현실을 꼭 집어 이야기 한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이제 자기 지역을 4년간 맡아 살림을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은공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과거에 얽매이게 된다면 미래를 계획할 여력이 없어진다.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보복인사라는 말도 나온다.

너무나 편향적인 승자 논리로 인해 오랜 시간 공직생활에 머물며 축적한 노하우가 대기발령이라는 이름으로 조직 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인사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고, 충분히 일을 맡아 해낼 수 있는 인재의 등용이 이뤄진다면 공직사회의 술렁임도 없을 것이며, 이를 바라보는 도민과 시민, 군민들의 시선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선거는 끝났다.

그리고 전라북도 도지사를 비롯한 14개 기초자치단체장의 임기도 벌써 2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인사가 단행되며 자신을 도운 사람들의 단체 입성이 줄을 잇고 있다.

유방이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치루기 위해 합당한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나라가 400년 역사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건국 초 건국공신들에 대한 견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 태평성대와 치세의 시대에는 그 능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

단체장들은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논공행상에 치중한 인재등용보다는 자신을 보좌해 군정과 시정, 도정을 원활하고 발전적으로 이뤄나갈 수 있는 인재를 판별하고 적소에 등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과감한 유방의 대승적 배신이 절실 한 때이다. 황석규 전 전북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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