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한국문학의 궁전, 미당
27. 한국문학의 궁전, 미당
  • 이원희
  • 승인 2006.08.2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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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의 문인, 서정주 -
미당 서정주는 결코 미완의 존재가 아니었다. 미당, 완성되지 않은 집이라는 뜻으로 서정주는 호를 지었지만 우리 문학사에서 그의 존재는 커다란 한 채의 집이었다. 아니 차라리 궁전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1941년 첫 시집 ‘화사집’을 발간한 이래 시집만도 15권이 넘는다. 자그만치 1000편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 수는 독자를 압도한다. 현대 시사에서 양적으로 이만큼의 작품을 생산한 시인도 없다. 그만큼 그는 한평생 시를 푯대 삼아 떠돌이 의식으로 시적 세계를 넓혀 나갔다. 친일을 했고, 독재권력의 주변에 맴돌았던 전력 탓에 그의 시적 웅장함이 그늘에 가린 적도 있었고, 현실을 외면한 순응주의적 문학관을 보였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서정주의 시적 세계는 하나의 신화를 이루면서 독자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머무는 대가적인 면모를 보인 시를 발표하였다. 20년대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시적 경향을 극복 대상으로 삼으며 30년대 시인들은 새로운 시 형식을 모색한다. 김기림을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이상의 초현실주의 실험이 그것이다. 30년대의 시문학 풍경이 대체적으로 도시지향적인 소재를 회화화한 모더니즘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정주의 시적 출발은 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건 시인 박재삼이 지적한 대로, 서정주는 ‘눈치를 살피지 않은 언어’를 구사하면서 향토적이고 민속적인 세계 즉 전통지향적인 순수시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자화상’에서 부끄러운 가족사를 부끄럽지 않게 고백하고 있다.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부끄러운 가족사를 애써 감추지 않는 그야말로 ‘눈치를 살피지 않은 언어’로 통렬한 자기고백을 감행한다. 이러한 시적 포즈는 민족어라 할 수 있는 기층민중들의 언어를 시어로 빚어내는 장인적인 면모에서도 확인된다. 일상언어를 시 언어로 만들어내는 미감이나, 직정의 언어를 맛깔스럽게 빚어내는 서정주의 시는 한 마디로 민족어의 보고라 할 만하다. 그래서 그의 시를 ‘언어의 정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60여 년 동안 애오라지 시의 길만을 걸었던 미당. 한때 훼절시인이라는 낙인으로 그의 시가 교과서 수록에서 제외된 적도 있었고 그의 시문학이 시인의 행적과 관련되어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은 무엇으로 존재성을 갖는가. 시는 시인의 영혼을 언어화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시인의 존재성은 시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삶과 예술이 일치된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이 아닌 유토피아가 아니겠는가. 식민지와 전쟁, 해방과 쿠데타 등 한국근대사의 가파른 물줄기 속에서도 오로지 시를 통해 민족의 원형적 정체성과 언어를 탐색했던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 초록이 지처 단풍 드는데’ 그의 명시 가운데 하나인 ‘푸르른 날’을 읽노라니 서정주의 삶과 예술을 아퀴를 짓는 듯해서 새삼 감회가 다르다. 여름이 가을로 가듯, 인생 역시 그렇게 단풍으로 지고 마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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