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전북의 문인, 신석정
28. 전북의 문인, 신석정
  • 이원희
  • 승인 2006.08.2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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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를 건너는 시인의 표정
 목가시인 신석정. 30년대 대표적인 평론가인 김기림에 의해 명명된 이 말은 신석정의 시세계를 요약적으로 구축한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목가는 원래 목동과 목녀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하지만 신석정의 경우는 목동녀의 사랑이 아닌 자연회귀 혹은 자연동경의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신석정은 목가시인이라기보다는 자연시인이다.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 좁은 들길엔 들장미 열매 붉어 /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마세요 /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교과서에 수록된 이 시는 신석정의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어린 소년이 어머니를 부르며 끊임없이 ‘먼 나라’를 가자고 조른다. ‘깊은 삼림’, ‘고요한 호수’, ‘좁은 들길’ 등 먼 나라의 풍경은 먼 이국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 조국이다. 그럼에도 화자는 먼 나라라고 강조한다. 왜 그럴까. 화자가 동경하는 먼 나라는 ‘흰 물새 날고’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나라다. 다시 말해, 고요와 질서를 파괴하는 일체의 세력이 없는 평화로운 장소인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당시 국내 상황은 어떠했는가.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사람과 물자를 무지막지하게 강제 동원시켰고 일제 강압으로 민족단체인 신간회가 해체되었으며 카프당원 1차 검거 사건이 바로 1931년에 일어났다. 이 시가 발표된 시국은 한 마디로 무질서한 난세였다. 시인은 난세의 철학으로 시의 목소리를 세웠다. 일체의 인위를 배격했던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처럼 신석정 역시 자연 회귀가 현실을 부정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흔히 신석정의 시적 특성을 노장철학의 무위자연으로 설명하곤 한다. 노자나 장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의 핏발 진 전쟁의 세월에 그들은 일체의 인위적인 행위를 거부하면서 무위자연의 논리를 펼쳤다. 따라서 노장철학은 난세의 철학이다. 무위자연은 일체의 인위를 배격하고 자연상태에 놓이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문화가 인위의 작용 결과라 한다면 무위는 반문화적이고 반체제적 성격을 띤다. 병든 시대에 대응하는 생존전략으로 시인은 일체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폭악적인 현실을 비판한다. 이 시를 한가롭게 피리나 불면서 목동의 사랑을 노래하는 투의 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방향이 영 잘못되었다.

 시인은 소망한다.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고 말이다. 날 저물어 어둠이 대지를 누르고 있는 현실의 뼈저리게 슬픈 생활에서도 시인은 애오라지 ‘푸른 별’로 상징되는 희망과 낙관적 미래를 지향하며 난세를 건너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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