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의 가족
영화 괴물의 가족
  • 김흥주
  • 승인 2006.08.2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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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한국 영화사상 최단기일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쾌속 질주하고 있다. 이 추세면 ‘왕의 남자’가 가지고 있는 최다 관객 기록을 넘어 2천만 관객 시대를 열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우리나라 총가구수가 15,988천 가구임을 감안하면 가구당 평균 1명 이상씩은 괴물을 봤다는 결론이다. 지난 2002년의 월드컵 열기와 더불어 또 한번 한국인의 집단 광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괴물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평론가들은 괴물이 지금껏 검증된 한국영화 잘 되는 정석에서 좋은 것만 골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환경이라는 사회적 이슈나 반미라는 정치적 진보를 배경으로 깔고, 한국식 가족주의를 추구하면서, 스타보다는 개성 강한 연기자를 내세우고, 걸쭉한 대사를 타고 흐르는 유머와 가슴 저리는 비극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권력을 희롱하는 가족의 사투가 최근 참여 정부의 무능함에 몸부림치는 소시민의 보상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에 더욱 괴물에 집착한다는 지적도 흥미가 있다.

 모두가 일리 있는 분석이다. 그러나 가족을 전공하는 연구자 시각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야만적인 사회안전망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속내가 편치 않다. 일개 소시민 가족이, 그것도 우리 사회가 그토록 경멸하는 ‘해체’ 가족이 공권력이나 사회시스템을 제쳐두고, 아니 오히려 그들과 싸워가며, 직접 괴물 처치와 ‘딸이자 손녀이자 조카’인 현서 구출에 나서야만 하는 현실이 문제다. 이른바 한국적 복지 시스템의 상징인 ‘가족부양체제’가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이다.

 가족부양체제는 노인이나 아동, 장애우 등 요보호 가족 구성원을 ‘가족체계를 통해 보호하려는 복지(welfare through the family)’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효’의 강조를 통해 노인부양을 가족이 책임을 지고, 모성을 자극하여 가족 내의 어머니가 아동양육을 전담하도록 하는가 하면, 영화 말아톤에서 보여주듯이 장애 아이를 가족에서 끝까지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등이 가족부양체제의 모습들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가족은 해방과 전쟁 공간에서, 산업화의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복지를 떠 맡아왔다. IMF 시절에도 가족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가족이 사회적 어려움을 막아내는 최후의 보루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최근의 현실을 보면 우리 사회의 가족이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혼율과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혼율은 급증하고 있다. 부부가 같이 벌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집안에 치매노인 한명 있으면 정상적인 가족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럼에도 계속해서 가족을 통한 복지, 즉 가족안전망만을 강조한다면 가족해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형태상의 해체가 아니라 실질적인 가족의 해체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괴물에서 보여준 가족의 사투를 잘못 이해하면 “역시 가족이 최고야”라는 가족애와 연결되어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써야 할 정부와 사회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소지가 많다. 괴물에서 보여준 가족의 사투는 현실이 아닌 영화 속에만 존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에 불과하다. 현실의 가족은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난 책임 때문에 더 이상 부양체제를 가동할 수 없을 정도로 과부하에 걸려있다. 복지 선진국의 가족정책은 가족을 하나의 복지단위로 보고 이들의 기능성을 강화할 수 있는 ‘가족을 위한 복지(welfare for families)’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때문에 정책 효율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우리의 가족정책은 여전히 가족을 복지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려 한다. 여기에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가족의 부양책임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영화 괴물의 가족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을 무섭게 질타하고 있다. 적어도 가족 연구자에게는 그렇게 보인다.

 가족은 더 이상 힘이 없다. 이젠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도덕운동이 아니라 가족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선뜻 나서 가족을 꾸리고, 출산이나 양육 같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려 할 것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실효성이 없는 이유는 여전히 가족안전망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지금이야 말로 가족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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