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행복의 나비효과
31. 행복의 나비효과
  • 이동희
  • 승인 2006.08.28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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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 장취하려뇨.

 -이정보(李鼎輔.1693~1766)

 

 조선 후기 시조의 대가 이정보 시인은 행복 만들기에 능숙했던 시인이다. 78수나 되는, 적지 않은 시조 작품을 남겼던 이정보는 행복의 연쇄반응을 잘 알았던 시인이다. 행복을 만드는 일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시인이다.

 화자는 꽃-완벽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의 결정체를 만끽하고 있으나 거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꽃을 더욱 꽃답게 하는 상승효과에 대하여 미적인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달’이 그것이다. 꽃피면 달을 생각한다. 화용월태(花容月態)란 말처럼, 꽃은 달과 가장 잘 어울린다. ‘꽃 같은 용모에 달 같은 자태’는 최고의 미인이 될 만하다. 그래서 월하미인(月下美人)이라는 숙어에 가장 어울리는 미인으로 꽃이 제격이 아니겠는가!

 꽃과 달의 어울림은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될 만하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설레는 아름다움을 가장 극치의 절정으로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달빛 어린 가운데 드러난 벚꽃을 감상하는 일이다. 달빛 어린 벚꽃에 넋을 잃고 있노라면 그것은 꽃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냉혹한 듯 환상적이며, 신선한 듯 매혹적이며, 눈부신 듯 조촐하며, 흐드러질 듯 나풀대는 자태는 영락없이 화용월태 그 모습 그대로다. 어찌 벚꽃뿐이겠는가?

 화자가 꽃을 보며 달을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광경이었을 것이다. 근자에 꽃이 달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기 어려운 환경이다. 꿩 대신 닭이라고, 달이 아니면 가로등 조명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달빛-불빛의 꽃’, 아름다운 선경을 감상해 볼 일이다. 행복이 먼데 있어 찾아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비 날갯짓 같은 가벼운 마음자락임을 아는 건 어렵지 않다.

 달빛어린 꽃을 감상하면서 술이 당기는 구미(口味)는 자연발생적인 미감(味感)이자, 연쇄반응적인 미감(美感)이다. 어찌 꽃을 보며 달빛을 그리지 않을 수 있으며, 달을 맞이하여 어찌 한 잔 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달이야말로 술을 불러오는 가장 고전적인 소재요, 달빛 어린 꽃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 술은 글자 그대로 신선주가 아니고 무엇이랴.

 달빛 어린 꽃의 아름다움이 술에 취한 즐거움에 못지않다. 그래도 혼자서 마시는 술은 쓰기만 하다. 그래서 이백도「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달빛에 함께 취할 벗을 만든다. 나와 내 그림자와 달, 셋이 한 통속이 되어 정담(鼎談)을 나눈다. 아무리 이야기를 길게 해도 밤은 짧을 것이며, 아무리 술을 마셔도 술동이의 술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달빛에 어린 꽃을 대하고 술을 얻었으니, 이 지선지미(至善至味)의 소재들과 함께 할 벗이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 이백이 그랬듯이, 이 시의 화자도 벗을 생각한다. 꽃의 향기를 삶의 풍류로 발음할 줄 아는 벗을, 달빛 처연함을 생활의 여유로 노래할 줄 아는 벗을, 술의 취기를 빌어 거짓 없는 인생을 바로세울 줄 아는 벗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꽃은 달을 낳고, 달은 술을 낳고, 술은 벗을 낳는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의 결핍을 소망의 노래로 담아내듯이, 이 시의 화자도 ‘언제면…’ 그것이 가능하겠느냐고 스스로 묻는다. 소망이 이루질 날도 멀지 않다.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나비효과처럼, 우리에겐 작은 소망 하나로도 행복나라까지 날아갈 수 있는 시(詩)가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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