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최남선
32. 최남선
  • 이동희
  • 승인 2006.09.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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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그 나른한 시간의 완보(緩步)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최남선(崔南善.1890~1957)

 

 유난히 무덥던 올 여름, 하루 중 더위가 가장 극심한 오후 두시에 필자는 평소 막역하게 지내는 두 사람의 문우와 함께 ‘엄뫼’에 올랐다. 우리 일행이 염불암 입구에 있는 약수터에서 겨우 한잔의 청수로 목을 축일 사이에 고온다습한 여름날은 기어코 두터운 먹구름을 몰아와 잠시 머무는 듯하더니, 서늘한 일진광풍과 함께 산사를 에워싸고 있는 나무숲을 굵은 소나기로 마구 두드리며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사나운 소나기 기세도 한 풀 꺾이고 언제 빗줄기가 있었느냐는 듯이 여름은 또 다시 그 무더운 갈기를 세워가고 있었다. 방금 전에 내린 빗줄기로 염불암을 에워싸고 있는 고목들과 그 고목들로부터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염불암 지붕위에 모아져 우리가 서 있는 처마 밑으로는 아직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바로 그때였다. 한 문우가 나지막하게 시조 한 수를 읊조렸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시를 낭송하는 그 소리는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음악(音樂)보다 음악다웠으며, 시를 받아들이는 그 분위기는 지금까지 겪어본 어떤 문향(聞香)보다 더 향기로웠으며, 시가 퍼져나가는 산사의 모습은 지금까지 감상한 어떤 영상(映像)보다 더 영상(影像)다웠다.

 비가 그쳤다고는 하지만, 낙숫물 소리는 고즈넉한 산사의 여름을 한 없이 한가로운 나른함 속으로 빠뜨렸다. 필자를 포함한 다른 문우도 할 말이 없어서 묵언(?言)이 아니리, 낙숫물 소리에 맞춰 여름의 잔영-잔향-여운을 음미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이때의 낙숫물 소리는 소리라기보다는 한 편의 교향곡을 이루는 미적 음표였음에 틀림없다.

 이 음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성장배경이 모두 시골인 문우들의 고향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추억의 노래가 되고 말았다. 그 무덥던 여름날의 장마, 지루한 장마 끝에 지시락물-낙숫물 소리를 세어가며 성장의 여름날을 보냈던 문우들의 마음을 한없는 추억의 나른함에 젖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묵언을 깬 대화의 소재들은 한결같이 몇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장마 끝에 무성하게 자라나는 호박넝쿨처럼 끝없이 이어져 갔다.

 낙숫물 소리는 리듬을 형성한다. 여름시계는 이 낙숫물 떨어지는 박자와 같다. 그 여름박자에 이름을 붙인다면 ‘나른함’ 말고 무엇이 있을까? 밤 깊은 겨울만이 사색의 호기는 아니다. 고독한 사색자는 한여름 나른함 속에서도 외로운 망부석이 된다. 이때의 기다림은 그러므로 이성(異性)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여름 한 대목을 깨뜨릴 만한 ‘무엇’이면 족하다.

 그 무엇의 실체가 무엇일까? ‘사람’이면 넉넉하다.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들어올 반가움은 사람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금방이라도 이 나른한 여름을 깨뜨릴 사람, 규칙적이지만 그 소리가 ‘점점 느리게-lentando’ 떨어지다가, 마침내 ‘숨이 끊어져 가듯이-morendo’ 사라져 가며, 마침내 ‘점점 평온하게-calando’ 소리도 작아지고 템포도 느려지는 낙숫물 소리는 그대로 인생을 반향(反響)하는, 음악이 아니고 무엇이랴!

 여름날 산사에서 우리 일행은 낙숫물 소리로 음악시를 작곡한 육당의 시조를 음미하며, 느리게 걸어도 마침내 인생의 고지에 오르는 길을 더듬고 있었다. 여름날 나른한 시간여행을 통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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