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 박기홍 기자
  • 승인 2006.09.12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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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50·변호사)의 ‘지방에서 희망찾기’ 발걸음이 분주한 모습이다. 12일 오전 본사를 방문한 그는 정오를 넘기자 곧바로 김제로 향했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막연한 담론에서 찾지 않고 지방과 농촌, 생활 속에서 경험과 지혜를 들으며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목표로 지난 3월27일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The Hope Institute)’를 설립한 후 광주·전남, 대전·충남지역을 돌아 전북을 돌고 있다.

 “말하기보다 말을 듣기 위해 왔다”는 박 변호사는 전북의 현안에 대해 가장 궁금해 했다. 새만금과 김제공항, 군산경제자유구역과 직도사격장 문제 등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추진에 3조원이 투자되듯 전북도 중앙의 지원이 흡족할만 하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중앙지원에 너무 의존할 일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중앙지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해도 나중에 되레 지역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희망 전도사’로 불리는 박 변호사는 “진정한 발전은 지역 지도자들과 주민이 서로 인식하고 전략을 같이 짜면서 나갈 때 이뤄진다”며 ‘자생적 성장동력 창출론’을 피력했다.

 박 변호사의 ‘내 고장 희망찾기’ 여정은 농촌이 어렵고 지방은 낙후됐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선 좋은 주민들과 훌륭한 지도자들이 땀방울을 흘리는 길이라는 논지다. 내생적 혁신 의지, 자발적 성장동력 창출만이 진정한 지역발전의 힘이 될 수 있다는 말과 통한다.

 박 변호사는 “그동안 수많은 예산을 농촌에 쏟아부었지만 농민들은 빚더미에 앉아 있다”며 “정부 지원이 되레 망친 꼴”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 의지하지 않고 지역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땀을 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육(지역인재 양성)과 아이디어(신성장 동력)를 모으면 지방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모델이 나온다는 것.

 이쯤 해서 새만금에 대해 한마디했다. 그는 “독일에 가보니 국제적으로 갯벌을 보호하고 우리의 순천만 갯벌에도 관광객들이 모인다”고 전제, “물론 전북이 너무 소외되다 보니까 (개발을 희망하는) 그 정서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렇다 해도 (환경을) 보존하면서 그에 버금가는 투자가 전북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전국적으로도 많은 공단부지가 놀고 있는데 새만금의 엄청난 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느냐”며 “독일의 경우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마다 세계적인 기업이 두 세 개씩 있는데, 이들이 시민을 먹여살리더라”고 소개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형편이 다르지만 독일 등 선진지역 사례를 보면 가야할 방향이 눈에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중국이 상하이 푸동지구를 조기에 개발하고 심지어 망망대해 위에 30km 이상의 대교를 세워 항만을 건설하는 등 동북아 허브를 향한 거보를 딛고 있다는 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실천적 대안 마련에 나선 만큼 다산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한 박 변호사는 거창한 건물짓기, 대형사업 추진에 대한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 굳이 큰 건물에 있지 않더라도 큰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따지고 보면 각종 공사투자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다 재정적자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주지역에도 곳곳에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데, 구도심의 공동화라는 문제를 낳게 됩니다.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 토목공사를 하려는 건설사, 경기를 살리려는 정부 등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 때문에 선진국 일본이 심각한 재정적자에 허덕였고, 결국은 ‘잃어버린 10년’을 통탄하지 않았습니까.”

 박 변호사는 이 대목에서 “우리 나라도 IMF 이상의 위기가 올 것”이라며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의 한건주의, 대형사업 추진 양태가 자칫 일본의 재정적자 전 단계를 닮은 만큼 97년 외환위기 이상의 심한 시련을 겪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실제 박 변호사는 광주와 부산 지하철 적자액이 200억원, 1천억원씩 달한다며 정치인들의 한건주의에 시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꼴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전북도청 역시 궁궐과 같더라는 그는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빌리지 않더라도 큰 건물에서 큰 정치가 나오진 않는다는 말로 대형 건물짓기 문제점을 신랄하게 질타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대,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든 뒤 91년 미국과 영국에서 2년 동안 공부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눈을 뜬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참여연대에 몸담았고, 2002년 8월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 재단이 본 궤도에 오르자 2년 만에 다시 ‘희망제작소’라는 민간 싱크탱크를 설립하고 전북 등 지역의 민심과 희망을 탐방하고 있는 것.

 최근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던 박 변호사는 “전북에서도 희망을 발견했다. 서울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희망의 모델이 있더라”며 (주)하림과 임실 치즈를 예로 들었다. 하림의 김홍국 회장이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한 박 변호사는 임실치즈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며 네트워킹만 잘 되면 지역을 먹여살릴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정부의 농촌정책과 관련,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이는 현장의 목소리를 안 들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나라와 같은 현실에서 규모의 경쟁력을 내세워 ‘기업농’을 말한다면 수긍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며 현실성 있는 ‘대안농업’을 주장했다.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그의 순박한 얼굴에는 지방과 농촌을 위해 고민하는, 그러면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진지함이 가득차 있었다.

 박기홍기자 khpark@

 

 <박원순은 누구>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74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법대 입학·중퇴

 1978년 단국대 사학과 입학

 1980년 22회 사법고시 합격

 1996∼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1년∼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2006년∼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막사이사이상 수상 

* 희망제작소: 올 3월27일 출범한 민간의 싱크탱크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영국의 사회창안연구소와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원순 변호사는 2002년 8월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했고, 2년 여 만에 재단이 본궤도에 오르자 ‘희망제작소’를 설립해 광주·전남과 전북 시·군을 돌며 지역의 원동력을 찾는 등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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