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충돌
속도의 충돌
  • 김진
  • 승인 2006.09.14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연 21세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 대한 많은 해답들 중에 하나가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비유였다. 1975년에 그 용어를 처음 사용한 존 갤브레이스는 영국의 BBC에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후, 그 강연내용을 토대로 책을 집필했다. 그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당시의 신조어가 내포하는 의미에 대하여 말의 여운이 좋고 사고의 범위를 제한하지 아니하면서도 분명한 주제를 시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 책의 출간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책을 미처 읽어 보지 아니한 사람도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의 뜻을 이해 할 정도로 일반적인 이야기가 되었으니, 탁월한 혜안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미래학자들의 통찰력에 감탄할 뿐이다.

 

* 부의 미래 (Revolutionary wealth)

 

 미래학자들을 이야기 하자면 앨빈 토플러를 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여 년 전에 쓰인 미래쇼크나 제3의 물결, 그리고 권력이동에 이어 15년 만에 펴낸 노학자의 ‘부의미래’는 불확실한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사실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막 들어선 지식혁명이라는 소용돌이의 본질과 변화 방향을 분석하고, 지식혁명이 불러올 미래가 ‘시간, 공간, 지식’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토플러의 예지를 믿는다면 앞날을 더듬어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속도의 충돌로 인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속도의 충돌에 대한 예로써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로 비유를 하였다. 즉 사회의 변혁을 주도하는 공급업체나 유통업체 같은 기업들은 시속100마일(160.9km)로 달린다는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작고 빠르고, 탄력적이며 네트워크로 조직화되어 있는 시민단체(NGO)가 90마일의 속도로 따라 붙는다.

 이어서 가족의 형태, 이혼율, 성행위, 세대 간 관계, 데이트 패턴, 자녀양육 등 가정생활의 모습들이 빠르게 변화하며 60마일의 속도로 달린다. 이처럼 기업, NGO, 가정의 생활 모습이 초스피드로 변해 가지만 대량생산 시대의 조직, 방법, 모델들을 그대로 고수하는 노동조합은 시속30마일로 뒤처지고, 소리만 요란한 정부 관료조직과 각종 규제기관들은 25마일로 더욱 뒤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도 못 미치는 조직들이 있으니, 바로 UN이나 IMF, WTO와 같은 정부 간 국제기구들이 그것이다. 새로운 참여자와 다양한 문제들이 국제사회에 등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관료구조와 활동들은 예전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 제4의 물결

 

 저자는 이러한 속도들에 대해서 미국을 예로 들었지만 그 의미는 세계적으로 동일하다고 전제하였는데 크게 동감하는 부분이 많다. 앞서 설명한 변화의 속도 중에서 너무 느리게 변하는 곳이 바로 3마일로 달리는 경제부국들의 정치조직이며, 가장 느림보는 변호사회나 법률회사 등을 포함한 법 그 자체라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은 분명한 시각차가 있을 수 있고,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혁명적 변화 속에서 법이나 정치인, 국가 관료조직과 규제기관들이 기업이나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시민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느려터진 변화의 속도로 인하여 흐름을 방해 받고 개혁적인 진보를 계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한국에 대하여‘불과 한세대 만에 제1, 제2, 제3의 물결을 모두 이뤄낸 나라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불과 40년 만에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넘어 지식과 정보사회의 선두에 나서고 있음을 두고 한 말이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제4의 물결은 고부가가치산업을 중심으로 고도의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비약적인 발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래란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미래가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한발 앞서 먼저 생각하고, 내 손과 발로 미리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손을 내민다. 새로운 기회를 안고 떠도는 미래는 지금 이순간도 한 발짝씩 다가오고 있다.

<경희대 무역연 연구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