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소리를 일으킨 비가비 명창 권삼득
31. 소리를 일으킨 비가비 명창 권삼득
  • 이원희의 컬처 플러스
  • 승인 2006.09.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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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신분사회가 급격히 붕괴되던 조선후기에는 예술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예인들이 많았다.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등 풍속화가들과 추사 김정희, 가인 안민영을 비롯한 낭만적 가객 등 역사에 떠오른 인물들이 숱하게 많다. 그러나 이름 없이 피었다 진 들꽃처럼 오직 예술혼을 불꽃처럼 피워낸 유랑 예인과 판소리 광대 등 역사 속에 숨은 인물들도 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이 가운데 판소리 광대 권삼득도 있다. 권삼득은 안존한 삶을 버리고 평생을 소리와 더불어 살면서 이 땅에 소리를 일으킨 인물이다.

 권삼득이 말을 타고 한양에 가다가 너무 소리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말을 탄 양반 체면에 소리를 할 수 없어 자신은 말에서 내리고 마부를 말에 타게 하고 그는 마부가 되어 소리를 했다고 한다. 양반 가문의 후예가 공맹을 멀리 하고 소리만 일삼다가 멍석말이가 되어 죽을 판에 죽더라도 소리 한 번 하고 죽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문중 어른들은 권삼득의 소리를 듣고는 탄복을 했다고 한다. 감영에서 소리로 황소를 웃게 해 봉변을 모면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판소리를 역사적 지평 위로 솟게 한 권삼득. 그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억리에서 안동 권씨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워낙이 소리를 좋아했던 그는 오랜 소리 공부를 한 끝에 득음을 하게 된다. 그의 본명은 권정이었는데 삼득(三得)이라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전해내려 온다. 사람소리, 새소리, 짐승소리 등 세 가지 소리를 귀신같이 한다고 해서 삼득이라고 하고,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말한 판소리 광대가 갖추어야 할 ‘너름새’, ‘득음’, ‘사설치레’, ‘인물치레’ 등을 두루 갖추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권삼득은 그만큼 판소리에 탁월한 기량을 보인 인물이다. 비가비란 양반 출신의 판소리 광대를 말한다. 세상을 쥐략펴략한 안동 권씨의 명문거족을 버리고 예인의 길을 걸었던 권삼득. 멍석말이를 당하고 가문에서 쫓겨난 그는 오직 판소리 하나를 몸에 두르고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유랑의 길을 떠난다. 위풍당당한 명문거족이 천시받는 판소리 광대가 되어 세상 밖으로 돌면서 삶의 애환을 소리 하나로 풀어주었다. 소리를 통해 자기를 확인했고 소리를 통해 사람들을 위안시켰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는 예술의 완성과 인간완성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권삼득은 닫힌 사회를 열면서 행복한 빈자의 길을 걸어간 인물이다.

 그는 세계로부터 자아를 분명하게 인식한 근대인이었다. 완주군에 있는 그의 묘지 앞에 소리 구멍이라는 게 있다. 소리 구멍에서 권삼득의 소리를 받아가려는 소리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단순히 소리 기술만을 받아갈 게 아니라 열린 정신으로 자기해방의 길을 걸었던 권삼득의 정신도 판소리 후학들이 본받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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