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정훈의 '귀가'
36. 정훈의 '귀가'
  • 이동희
  • 승인 2006.10.02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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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처럼 환한 귀갓길
 서녘 하늘에는 개밥별이 밝고

 등불 하나 별이듯 돋는 저녁

 삽 끝에 여름달 서려 제 호올로 빛나네

 -정 훈(丁薰.1911~1992 )의「귀가」전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두 가지 모습으로 비친다. 하나는 풍요롭고 경쾌하여 즐거운 길이요, 다른 하는 외롭고 쓸쓸해서 서러운 길이다. 즐거운 길을 돌아가는 이의 뒷모습에 비치는 어깨는 신명난 이야기가 잔잔한 강물처럼 출렁거리지만, 서러운 길을 돌아가는 이의 뒷모습에 비치는 어깨는 처절한 고독이 늦겨울 고드름처럼 녹아내린다.

 하루 종일 논밭에서 일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어깨는 물결처럼 출렁거린다. 하루의 근로에 대한 땀의 응답이 고맙고, 노동을 치하로 마중하는 가족의 기다림이 즐겁다. 근로의 성취감을 만끽하는 데, 거짓말 할 줄 모르는 흙을 상대하는 농사만큼 좋은 일도 없으리라.

 동시 작가 권태응 선생의 작품 ‘감자꽃’은 그대로 농부의 마음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이보다 더 확실한 메시지가 어디 있는가! 농부들은 자주 꽃 핀 감자에서 하얀 감자를 수확하려 하지 않으며, 하얀 꽃 핀 감자에서 자주 감자를 거두려 하지 않는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런 꿈도 꾸지 않는 이들이 농심이다. 그러므로 농심은 곧 천심이요, 천심은 곧 동심이 아니겠는가!

 보릿고개가 극성을 부리던 5~60년대 한 농촌 아이가 있다. 논농사가 주업인 시골에서 모두가 땔감이 부족하던 시절이다. 겨우 초등학교를 마친 아이는 땔감 때문에 근심하는 누나들의 한숨을 넘겨듣지 못하고 제 키만한 지게를 지고 동네 사람들을 따라 나무를 하러 간다. 편도 십리, 왕복 이 십리 길 나무꾼이 된 소년은 노동의 괴로움을 배우기 전에 자연의 넉넉함을 먼저 배운다. 어른 품으로야 한 아름이나 될까 말까한 땔감을 지게에 지고 뒷재를 내려오는 소년의 귀가는 그런대로 즐겁다. 누나들이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싸준 도시락을 나무그늘에 앉아서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꿀맛! 동네 사람들의 구수한 이야기는 공짜로 듣는 구비문학! 버거운 나뭇짐을 지고 비지땀을 흘리며 따라오는 소년을 측은하게 여긴 동네 아저씨가 나뭇짐을 덥석 들어다 자기 지게에 얹어두고 그냥 따라오게 하는 인정! 모두가 즐거운 학습이요, 소중한 인성 교육의 장이다. 소년은 동네 어귀에 와서 나뭇짐을 나눠 주시며 어린 근로의 대견함을 상찬하는 덤까지 얹어주시던 그 투박한 인정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던 어린 노동자의 풍요롭고 즐겁던 귀갓길을 어디에서 다시 맛볼 수 있으랴! 물성화된 현대, 기계화된 생활, 편리해진 도구들로 넘쳐나는 시대에는 어림 없는 일이다. 근로의 달디 단 땀방울을 음미하며 집으로 향하는, 무겁지만 결코 짐이 되지 않는 소년 나무꾼의 즐거움을 이 시대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으랴!

 이미 소년은 고은 시인이「머슴 대길이」에서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했던 노래를 몸으로 읊었던 것이다. 힘든 노동이 즐거움이 되는 비밀, 내 코가 석자인데도 남의 코를 풀어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심을 몸으로 배우며 돌아오는 길이 어찌 고단하기만 하겠는가?

 그런 귀갓길은 서녘 하늘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아가는 별들도 다정한 식구가 되고, 한 집 두 집 등불을 켜지듯이 하나 둘 돌아오는 가족들로 집안은 화기가 넘친다. 어찌 삽 끝에 서린 여름달 뿐이겠는가? 지게 목발을 두드리는 소년의 마음도 한가위 보름달처럼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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