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가을의 축제
33. 가을의 축제
  • 이원희
  • 승인 2006.10.08 15: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한국은 축제중이다.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일년 내내 축제의 징소리는 울리지만 특히 가을철에는 온나라가 축제의 나날이다. 지상에 불꽃을 터뜨리는 만산홍엽처럼 한국의 가을은 축제로 시작하고 축제로 끝난다.

 원래 축제는 오신(娛神) 즉, 신을 위한 놀이였다. 인간은 신에 의해 던져진 피투성의 존재인지라 신을 즐겁게 하지 않으면 인간사가 수월하게 풀리지 않는다는 믿음을 오래전부터 지녀왔다. 희랍의 디오니소스 제전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이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농경민족이었던 우리는 가을철이 되면 천신(薦新)이라는 의식을 행하고 신과 조상님을 모셨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가꾼 농작물 가운데 가장 알차고 신선한 곡물과 과일을 바치는 것이다. 이것이 추석의 연원이다. 풍년의 삶이 되도록 도와주신 신과 조상에 대한 감사 표시다. 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가족의 무사무탈함과 풍년 농사가 연속되기를 축원하는 의미도 함께 있다. 그러니 축제는 신과 인간이 교류하는 거룩한 시간이다. 축제의 기간은 일상의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축제는 일상의 질서가 전도되는 양상을 흔히 띤다.

 이로 보면, 축제는 먹거리와 관련이 깊다. 하기야 삶이란 먹거리를 위한 투쟁의 과정이 아닌가. 축제는 넉넉한 먹거리의 생산을 즐기는 신과 인간의 놀이였다. 그런데 먹거리를 위한 축제가 이제는 먹거리의 축제, 먹거리에 의한 축제로 변질되고 말았다. 축제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그 내용은 거기서 거기다. 먹거리도 그렇고, 행사 내용도 빤하다. 심지어는 진열되는 축제 상품도 별반 특징이 없다. 풍요를 가져다준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온데 간데 없고 상업성만 도사리고 앉아 있는 게 오늘날 축제의 얼굴이다.

 메밀꽃 축제, 청보리 축제, 전어 축제, 단풍 축제, 벚꽃 축제, 딸기 축제 등 축제는 자연이 주관한다. 철철이 자연이 마련해준 선물을 인간은 감사하게 받고 이에 대한 예의로 축제를 열어 신을 기린다. 그래서 축제는 성스러운 세계로 들어가는 신성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이 순간은 타락과 부패, 나태와 오만 등 일상생활의 온갖 잡스러운 것은 깨끗하게 정화되어 재생된다. 이것이 축제의 진정한 의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애오라지 신만을 위한 축제가 될 수는 없다. 축제를 만드는 신과 자연 앞에 삶의 주체인 인간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여, 사람들도 축제의 놀이에 신명을 피어낸다. 이것이 오인(娛人)이다. 생존을 위해 바싹 여몄던 마음의 긴장을 풀고 너와 내가 한마음이 되는 대동사회를 위해 축제는 하나의 마음의 약속이고 몸의 의식이었다.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이 시간, 축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새겨볼 일이다. 소모적인 행사가 아니라 생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축제, 지역공동체 주민들의 삶에 활력을 주고 날로 새로워지는 재생의 시간이 축제의 경험이 되는지를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