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정완영 '조국'
38. 정완영 '조국'
  • 이동희
  • 승인 2006.10.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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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우는 나라 사랑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 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정완영(鄭椀永.1919~ )

 「조국(祖國)」전문

 

 정완영 선생이 1960년 신춘문예에 ‘조국(祖國)’이 당선되었을 때, 우리의 조국은 그야말로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고 개탄할 만큼 피폐해 있었다. 학생들이 불을 붙여 성취한 4·19 민주혁명이 미처 그 꽃봉오리를 맺을 겨를도 없었다.

 이를 참지 못하고 군인들이 무력을 앞세워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마침내 군사혁명이 그 무참한 역사의 서막을 열어젖혔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납고 거친 횡포에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혁명군들을 박수로 환영하여 맞이하였던 것은 그만큼 우리 조국의 현실이 피폐해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벗어날 길 없었던 궁핍한 민생은 군사혁명을 어쩔 수 없이 찾아야 했던 변화의 돌파구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후 전개된 우리 현대사는 물질의 궁핍을 벗어나기 위하여 정신과 양심과 인간성을 외면한 채 무도하게 흘러왔다.

 어느 서양인인은 가야금 소리를 듣고 아기 울음소리 같다고 하였다. 하기는 우리가 즐겨먹는 ‘김’을 종이 태운 것이라거나 복사지라며 무시했던 그들이 이제는 김이 웰빙 식품이라며 선호한다니, 가야금의 미학에 무지했다 해서 그들을 탓할 일만은 아니다.

 정완영 시인은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우리가 수천 년 간직하고 있던 우리다운 미감과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와 우리의 피맺힌 역사를 통합하여 ‘조국’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가야금은 그냥 전통악기에 머물지 않는다. 조국의 피맺힌 역사를 부둥켜안고 애절하게 울음 우는 애국지사의 넋이며, 백의민족으로 형상화되어 궁핍을 절하였으면서도 초가삼간 삶을 유지했던 민족의 혼이었으며, 피골이 상접하여 여위어만 가는 조국의 현실에 통곡마저 다 못하고 흐느끼는 국토의 화신이었다.

 가얏고가 애통하며 부여잡고 울음 우는 애신으로 의인화되었다가 곧 겨레의 애인인 조국으로 승화되기도 하며, 가얏고가 애절한 서정으로 흐느끼다가 두렷한 밝은 달로 형상화되었다가 이내 푸른 역사[靑史]에 비치는 민족의 모습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찌 슬픔이라서 모두가 소리 높여 울 수만 있단 말이냐! 어떤 슬픔은 어깨만 흐느끼기도 하고, 어떤 설음은 소리 없이 눈물만 찍어내기도 하며, 어떤 비감은 눈물 대신 자지러지는 절망으로 눈물마저도 말라버리지 않던가! 그럴 때마다 하늘은 민심이 천심이라며 그 슬픔, 그 설음, 그 비감을 다 받아주느라 시퍼렇게 멍들어 있지 않던가!

 기쁨이 절정을 지나면 울음이 되듯이, 슬픔도 절정을 지나면 웃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얏고는 그냥 슬픔을 울지 않는다. 가얏고는 울음 웃어 학처럼 고결하게 야위어가는 역사의 절정을 음률하며, 가얏고는 울음 웃어 학처럼 정갈하게 여위어가는 민초의 한을 장단하며, 가얏고는 울음 웃어 학처럼 정신의 표상이 되어 겨레의 가슴을 두드리는 것이다. 어찌하여 가얏고를 한낱 악기에 머문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명주실 열 두 줄에 얹힌 가야금의 사연은 학처럼 여위어가는 조국을 붙안고 천년을 사랑해 온 민초들의 사랑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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