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독서의 얼굴- 生思, 感思, 取思
35. 독서의 얼굴- 生思, 感思, 取思
  • 이원희
  • 승인 2006.10.22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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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이 표현은 너무나도 당연시되어 그게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문화공동체에서 추방될 지경이다. 그러나 이 가을에 다시 생각해본다. 과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가. 릴케식으로 말하면 가을은 위대한 여름의 결정체다. 여름의 더운 햇빛과 습한 비바람이 만들어낸 결실의 계절이 곧 가을이다. 온갖 과실과 곡물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산야를 노랗고 붉게 물들이는 단풍은 쪽빛 하늘과 대비되어 참으로 눈빛 찬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가을은 봄과 마찬가지로 분명 시각의 계절이다. 온갖 꽃들이 지상에 터지는 봄과 더불어 가을은 꽃들의 엄숙한 제의가 마련한 과실들로 눈을 즐겁게 한다. 이러한 때 방안에 틀어박혀 책과 씨름하는 건 아무래도 계절에 대한 배반일 성싶다.


 독서삼여(讀書三餘)라는 말이 있다. 책읽기에 딱 좋은 세 가지 때를 말하는데 비올 때, 밤 그리고 겨울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때는 나를 외부세계로 밀어내기보다는 자아의 내부로 침잠하기에 맞춤하다. 나 홀로 고즈넉이 사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 이 세 경우다. 이럴 때 책과 더불어 말없는 대화를 나눈다면 효과 만점이다. 그래서 독서는 가을보다는 겨울이 훨씬 좋은 계절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삶의 이치를 발견한다. 그러나 독서는 반드시 책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닌 듯싶다. 지식과 정보 습득이 독서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라 해도, 결국 독서는 세상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독서를 통해 우리는 생의 지혜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적을 위해 독서외의 형태도 가능하지 않을까. 독서만이 지혜를 제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생사, 감사, 취사라는 용어로 접근해보기로 하자. 生思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우러나온다는 뜻이다. 우주와 자연의 흐름을 조용히 관찰하다보면 세상사, 인간사의 이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류의 수많은 선지자들, 탁월한 과학자들은 바로 이 생사의 원리에서 귀중한 것들을 발견해냈다. 아이작 뉴톤의 만유인력이 실험실에서 얻어진 게 아니지 않은가. 둘째로 感思가 있다. 이는 사물을 통해 삶의 이법을 깨닫는 것이다. 온갖 사물은 제 나름대로 고유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사물을 통해 삶의 이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取思다.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자신의 스승이 될만한 인물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을 통해 배울 점을 취해 삶의 지혜를 얻는 경우이다. ‘에밀’의 저자 루소는 이를 자연에 의한 교육, 사물에 의한, 인간에 의한 교육이라고 정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낮은 형태의 교육방식이 인간에 의한 교육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쳐대지 않았던가.


 명징한 가을 하늘이 광활하기만 하다. 빛과 열들이 점차 옅어지고 지상의 온갖 수목은 이에 맞춰 분주하기만 한 이 가을날, 자연이 건네는 말없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계절의 상상력을 가동해보기로 하자. 그건 책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으로 지혜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가을을 만나면서 생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生思의 자세야말로 이 가을에 실천할 수 있는 진정한 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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