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길라잡이
인권 길라잡이
  • 김수원
  • 승인 2006.10.23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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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웅성거림이 어느새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고성으로 변하고 있다. 내가 강의실에 도착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함은 진정하라는 표시건만 이 눈치 없는 녀석들이 선생의 의도를 알아차릴 리는 만무하다.

출석부를 펼쳐들고 무작위로 학생들을 지목한 후 “인권이 뭐지”, “인권침해와 차별의 유형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나”라고 물어야만 긴장하는 기색을 읽을 수 있다. 그것도 약간.

이런 의도된 질문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본격적인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인권은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이며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는 권리라고 인정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지 아마.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권리는 사람이 세계의 어느 장소에서 생활하건, 어떤 문화권?문명권에 속하건 관계없이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지니는 개념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어.”

“또한 연도별로 인권과 관련된 나름대로의 특징도 언급 해 볼 수 있는데 여러분들은 물론 모른다고 하겠지. 경제성장과 안보가 우선시되어 인권이 등한시되었던 시기도 있었고(1960년대), 유신과 긴급조치 등에 의해 민주화운동의 도전에 어려움을 겪었던 때(1970년대). 또한 각종 고문사건(부천경찰서, 고 박종철, 김근태)에 의해 인권옹호와 정의구현이란 구호가 무색하게 되기도 하였고(1980년대) 개혁의 의지는 강했으나 과감한 개혁조치로 이어지지 못했던 문민정부의 아쉬웠던 시기가 있기도 했지. 그러다가 국민의 정부시절부터는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활동하였고 업적과는 별개로 이들이 인권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들을 거치면서 우리의 권리와 우리나라의 인권은 조금씩 성장해 왔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쯤 되면 학생들은 자신의 얼굴표정으로서 지루함을 표시하고 나는 억지로 이를 왜면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자, 자 알았다 알았어.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이정도로 끝내지만, 앞으로 한학기의 수업은 이런 우리들의 권리들과 부딪치는 여러 대상들에 대해 하나하나 언급하는 거다. 경찰, 교도소, 외국인, 군대, 노인, 정신질환자 등과 관련된 인권과 사회 각 분야에서의 차별 등이 그것이야. 다시 말하면 국가에 의해 주로 이루어지는 인권침해 문제와 성별, 종교, 장애, 사회적신분, 출신지역(국가) 성적지향 등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적 차별을 통하여 인권과의 관계를 설정해 보려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내용이자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겠습니까”

비록 1주일에 3시간씩의 교양 수업이지만 이 인권과목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나는 항상 조그만 바램을 갖게 된다. 인권에 대한 접근과 이해를 통하여 여러 학생들의 인식에 조그만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그것인데, 거부할 수 없는 대세로서 인류보편의 질서가 된 인권과 이에 대한 탐구가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거름이 될 것임을 또한 확신한다.

이것이 학기마다 되풀이 되는 내 수업 첫 시간 풍경이다.

<우석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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