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마오쩌둥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김윤태
  • 승인 2006.10.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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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사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라는 두 명의 지도자에 의해 이끌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은 똑 같이 공산주의였지만 매우 다른 인물이었다.

 마오쩌둥은 정치와 전략뿐 아니라 철학적인 저서를 쓰고 이론가로도 유명했다. 마오쩌뚱은 경제관련 회의에서도 통계를 인용하기보다 철학적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어떤 면에서 혁명적 낭만주의자이자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자이었다. 마오쩌둥은 <이십사사>(二十四史), <수호지>(水滸誌) 등 고전을 주로 읽고, 고시(古詩)와 음악을 좋아했다. 마오쩌둥은 시를 직접 쓰기도 했으며 시인 기질도 많았다. 공산당 시절에도 여성 편력 때문에 당내 비판을 받기도 했던 마오쩌둥은 말년에도 젊은 여자들을 늘 주변에 두고 살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덩샤오핑은 시간이 날 때면 가족들과 함께 마작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소일하는 편이었다. 덩샤오핑은 공산당에서 군인으로서 성장하였지만 정치인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자그마한 체구의 덩샤오핑은 재치 있는 말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했다. 그는 이론가라기보다 재담가이었다. 그는 프랑스와 소련에서 6년 반 정도 있었지만,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의 연설에서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인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는 "마르크스와 레닌은 지난 세기의 사람들이다. 대단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다시 살아나서 오늘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 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받았다. 그래서 덩샤오핑의 저작은 이렇다 할 이론적 주장이 없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를 꼽으라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꼽는다. 마오쩌둥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중국을 해방시킨 지도자이고, 덩샤오핑은 중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만든 지도자이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에서 보여준 마오쩌둥의 과오와 텐안먼 진압에서 보여준 덩샤오핑의 잘못은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에 의해서 권력에서 실각하고 철저하게 탄압을 받았지만, 권력을 장악한 이후 마오쩌둥에 대한 비난을 삼가려고 애썼다. 덩샤오핑은 영리하고 신중한 정치가이다.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라고 지적했지만, 마오쩌둥의 업적은 공(功)이 7할이고 과(過)가 3할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이는 물론 마오쩌둥을 따랐던 공산당 내부 세력과 마오쩌둥을 지지하는 중국 인민들의 정서를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 표현이었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도 논란의 주인공이다. 박정희는 한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지도자이지만 유신체제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은 책임자이기도 하다.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가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 인권과 민주주의를 무참하게 억압한 과거는 용서하기 어려운울 것이다. 역사란 항상 어느 한 면만 보고 평가할 수는 없다.

 과거를 모조리 부정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수긍할 수 있을까? 친일파 청산을 내세우면 친북행위 조사로 맞서는 정치권의 공방을 보면서 우리가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친북좌파라고 보고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수구보수라고 보는 시각이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서로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는 쉽지 않을 듯하다.

(건양대학교 사회학 교수, <한국의 전망>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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