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물의 신화학
36. 물의 신화학
  • 이원희
  • 승인 2006.10.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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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TV드라마 ‘주몽’에서 그의 어머니는 유화 부인이다. 우리 신화에서 유화는 하백의 딸로 해모수와의 사이에서 주몽을 낳았다. 발이 셋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 해모수가 태양을 상징한다면 하백은 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몽은 태양과 물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셈이다. 고구려 동명왕 신화에 따르면 우리는 천상과 지상의 정기를 고루 받은 민족인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환웅과 웅녀의 결합이 그렇듯. 신화를 보면, 주몽은 외할아버지인 하백의 도움을 톡톡히 받는다. 주몽이 조선 유민들을 이끌고 졸본으로 향할 때 큰 강물을 만나게 된다. 이때 주몽은 할아버지인 강의 신 하백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자라들이 나타나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세계 어느 민족이든 물과 관계되는 창조신화를 한두 개씩은 지니고 있다. 물과 관련된 희랍신화에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아내 가이아를 몹시 박정하게 대했다. 가이아가 아들인 크로노스를 부추긴 끝에 크로노스는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성기를 거세하고 그 정액을 바다에 뿌렸다. 파도에 밀려 떠다니던 정액이 바다의 물거품으로 변하고, 그 속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조개껍질을 열고 태어났다. 일본의 창조신화 역시 물과 관련이 깊다.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잠을 자다 깨어난 잉어가 격렬히 몸을 비틀며 물장구를 치는 바람에 엄청난 파도가 일고, 그 속에서 일본 땅이 솟았다는 것이다.

 인류의 창조신화에 물이 관련된 건, 물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지구 자궁의 즙이라고 하듯이 물은 지구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사막의 선인장을 포함해 그 어떤 생명체일지라도 물이 없다면 더 이상 생명은 이어지지 않는다. 지구상에는 다종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지만 이들의 근원은 단세포 원시해양생물체다. 물이 생명을 낳은 것이다. 또한 물은 재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독교에서 요한의 세례는 말할 것도 없고 고전소설 ‘심청전’에서 인당수는 죽음과 파멸이 아니라 재생과 부활을 의미한다. 심청이가 심황후로 존재론적 상승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인당수에 빠짐으로써 가능하다. 이처럼 물은 생명 그 자체를 온전하게 하며 오염과 타락을 깨끗이 씻어내 정화하고 재생한다. 이것이 물의 정신이자 물이 지닌 신화학적 의미다.

 가을 단비가 내렸다. 오랜 가을 가뭄으로 대지는 바짝 메말라 농가에서는 과실의 수확량이 예전에 비해 30% 이상 감소될 예상이라는데 그나마 늦게라도 다행이다. 흔전만전 물 쓰듯하던 시대는 갔다. 너무나 흔한 게 물이라지만 우리는 물 부족 국가이다. 이참에 물의 정신을 새삼 새겨 보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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