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개방화 시대와 문화 다양성 협약
세계화 개방화 시대와 문화 다양성 협약
  • 장병수
  • 승인 2006.10.3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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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1월 1일 나프타(NAFTA) 체결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이어 멕시코의 제2의 정복으로써 60년 이상 쌓아온 멕시코의 정체성을 나타냈던 강력한 영화산업이 몇 년 만에 파괴됐다.”

 위의 글은 지난 15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미 FTA와 문화다양성협약 그리고 스크린쿼터제”란 주제를 두고 개최된 국제컨퍼런스에서 알프레도 구롤라 멕시코 영화감독노조위원장이 주장한 글이다. 구롤라 감독에 의하면 “멕시코의 영화 산업은 1994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10년간 747편이 제작되었으나, 이후 1994년에서 2005년까지 70%가 감소된 250편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급격한 감소는 영화사 도산, 영화 수출 감소 및 수입 증가 등을 유발시켜 멕시코 영화 산업 전반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의 영화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1997년 영화제작지원기금과 2001년 영화산업진흥기금을 조성하여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 침체에 빠진 멕시코 영화산업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현재 멕시코 극장의 80%가 미국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이제 한국 영화는 한해 100편 이상의 제작수를 보이며 외형적으로 커다란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초 정부는 우리 영화산업의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한미 FTA 협상 카드로 기존의 스크린쿼터제의 자발적인 축소를 선언했다. 동시에 정부는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위해 영화발전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정부는 지난 10월 23일 한국영화산업 활성화를 위해 향후 5년 동안 6400억원을 투입하여 2011년까지 한국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3%로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예술영화 독립영화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제작 환경도 개선하는 등 다양성 확보와 안정적 투자 환경을 위해서도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구롤라 감독이 주장했듯이 우리나라 영화산업도 멕시코의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에서도 영화를 단순히 통상의 문제로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 산업이 아니다. 더욱이 통상의 대상이 될 수도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영화는 그 나라의 정체성, 가치관 및 삶의 양식 전체 등등을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로써 그 나라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2005년 10월 유네스코는 문화를 통상 협상의 대상으로 요구하는 것에 대해 ‘문화 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협약’(일명 ‘문화 다양성 협약’)을 체결하여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협약은 “자국의 특수한 상황과 필요성을 고려해 그 영토 안에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및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조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을 근거로 국내 영화인들은 “한미 FTA 협상 전제로 제시된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2005년 10월 채택된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의 기본정신에 위배됨을 밝히고 한국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짐 매키 캐나다 문화다양성연대 국제협력국장도 "무역협상에서 전면적인 시장 개방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문화 상품과 서비스는 단지 경제적 상품으로만 취급된다. 영화는 가치관, 정체성,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현실적으로 순전히 시장의 원리에만 맡겨둘 경우 세계의 문화 다양성은 심각한 훼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계화 개방화를 거역할 수 없는 시점에 ‘일제의 강점기’와 6.25 전쟁 이후 진행된 미국의 무차별적인 ‘문화 침략’이 우리의 문화와 삶의 방식에 얼마나 치명적인 단절과 파괴를 가져왔는지 명심해야할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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