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땅이름이 내일을 연다
39. 땅이름이 내일을 연다
  • 이원희
  • 승인 2006.11.19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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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이름이 있듯이, 땅도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디 사람과 땅뿐이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삼라만상이 제각기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이름은 다른 사물과 구분을 가능케 하고 사물의 고유한 속성을 드러낸다. 시인 김춘수는 꽃을 꽃이라 부를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이름을 부르는 순간 대상은 어둠과 미완의 존재에서 밝음과 완성의 존재로 탄생된다는 것이다. 이는 이름이 사물의 본질을 담고 있는 중요한 기호임을 말한다. 여기에 생각을 박고 찬찬히 따져보면 이름은 분명 스쳐 지나칠 언어현상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땅이름은 단순히 지명의 의미를 넘어서서 미래를 먼저 보여주는 예견적인 속성이 있다는 사실에서 주목을 요한다.


 첩첩산중 산골 진안에 용담이라는 땅이름이 있다. 무주, 진안, 장수를 합친 무진장은 그야말로 무진장한 산세로 인해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오지 중에 오지다. 이런 첩첩 산골에 용담이라는 땅이름은 의외다. 용담(龍潭)은 용이 사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어지간한 물에서 용이 살 수 없으니 첩첩 산중 진안이라는 지역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땅이름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가. 용담 저수지가 들어서 그야말로 황룡, 청룡들이 물 속 어디선가 있을 것만 같이 깊고 푸른 저수량을 보인다. 그래서 용담은 마치 잠룡처럼 숨어 있다가 후대에 이처럼 거대한 연못이 될 것을 미리 땅이름으로 알려주었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땅이름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됨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제 금구(金溝)는 사금 채취가 가능한 지역이고, 군산 옥산은 옥이 생산되는 땅이다. 온양, 온성처럼 ‘온’(溫)자가 들어있는 땅이름은 온천과 관계가 깊다. 이런 곳에다 파이프를 박는다면 아마도 온천물이 솟아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이 높다. 경기도 수원에 신갈이라는 지역이 있다. 신갈은 경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나누어지고 합쳐지는 곳이다. 그런데 신갈의 땅이름이 갈촌이다. 갈촌은 칡넝쿨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도로가 칡넝쿨처럼 얼기설기 복잡하게 꼬인다는 사실을 땅이름이 먼저 예견해주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예부터 내려왔던 것들. 이것이 진정 우리의 내일을 열게 하는 열쇠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연암 박지원이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은 법고창신이나, 고전에서 으레 말하는 온고지신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옛것을 다시 살피라는 주문이다. 현재와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발판은 기상천외한 새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남겨놓은 낡은 것들 속에 이미 새로운 비전이 들어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현재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밤실이라는 땅이름의 지역에서는 밤나무를 키워야 하고, 마을이름이 돌실이라면 석재를 채취해야 한다. 땅이름은 우리에게 현재와 미래를 살피게 한다. 이로 보면 땅이름은 단순한 의미 이상을 지닌 생존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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