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작자 미상 사설시조
43. 작자 미상 사설시조
  • 이동희
  • 승인 2006.11.2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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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슬픔까지도 웃음으로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 뫼헤 매게 쫓긴 가토? 안과

 대천(大川) 바다 한가온대 일천 석(一千石) 시른 배에 노도 일코 닷도 일코 뇽총도 근코 돛대도 것고 치도 빠지고 ?람 부러 물결 치고 안개 뒤섯계 ?자진 날에 갈 길은 천 리 만리 나믄듸 사면(四面)이 거머어득 져뭇 천지(天地) 적막(寂寞) 가치노을 떳는듸 수적(水賊) 만난 도사공(都沙工)의 안과,

 엇그제 님 여흰 내 안히야 엇다가 ?을?리오.

 -작자·연대 미상(사설시조)

 

 이 사설시조의 화자는 이별의 아픔을 절절하게 토로하고 있지만, 정작 독자들은 해학미의 절정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상실의 절망감을 설상가상(雪上加霜)의 극한적 상황으로 나열하되 점층적 구성법으로 절박감을 가중시킨다. 이별의 고통을 극적 긴장감으로 고조시키되 그 와중에 웃음의 처방을 소홀히 하지 않는 수법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보면 우리네 삶이 함유하고 있는 고통 해소법에 주목하게 된다. 어떤 고통마저도 웃음이라는 용광로 속에 넣고 녹여낼 줄 알았던 선인들이 지녔던 삶의 슬기가 새삼스럽다. 노동의 고통은 물론이요, 애인을 잃은 슬픔마저도 웃음으로 치유하려 했던 선인들의 삶의 지혜가 음미할수록 즐거움을 준다.

 이 작품의 초장에 보이는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의 마음’이 그래서 가능하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까투리는 볏짚까리나 논두렁 밭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달려든다. 제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피할 수 있다는 듯이, 제 머리만 감추면 제 몸이 다 감추어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다급한 상황에 대처한다.

 중장에서 ‘절박한 상황에서 수적(水賊)을 만난 도사공의 마음’을 드러낸 부분은 이 사설시조의 절정이다. 무려 열 가지가 넘는 에피소드가 중첩하며 눈이 내린 아린 상실의 슬픔 위에 서리를 내려 소금을 뿌린다.

 어느 것 하나 의지할 수 없는 대천바다 한가운데다/ 거기에다가 일천 석(一千石) 화물을 적재했다/ 그런 배가 노도 잃고/ 닷도 잃었다/ 닷줄도 끊어지고/ 돛대도 꺾어졌다/ 그뿐인가? 항해할 수 있는 키도 빠져버리고/ 바람도 거세게 불어 파도는 사납게 몰아치고/ 거기에다가 안개마저 뒤섞여 짙은 날이다/ 아직도 갈 길은 천 리 만 리 남았는데/ 날은 저물어 사면(四面)이 검은 장막을 치며/ 천지(天地)간에 노을은 적막(寂寞)하게 어렸다/ 일천석 선적물을 노린 수적(水賊)까지 만났으니/ 도사공(都沙工)의 심정이 어떠할 것인가?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이 시의 화자가 노리는 점도 바로 그 대목이다. 중첩하는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궁지까지 몰리는 길이다. 매에게 쫓긴 까투리가 결국 대가리를 처박고 말듯이, 임을 잃은 절절한 슬픔이 가혹할수록 결국 남는 것은 화자의 처연한 심정만이 독자의 미감을 자극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서정의 중첩이 결국 종장 ‘엊그제 임을 이별한 나의 마음이야 어디에다 비교할 수 있으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은 그 슬픔을 땅에 묻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그 슬픔을 가슴에 묻는다. 이는 천붕(天崩)-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표현하는 부모 잃은 설음도 세월의 여울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임을 잃는 사람의 슬픔은 세월의 이랑 속으로 결코 묻힐 수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설음마저도 해학으로 결구하는 작가의 여유가 시대를 넘어 각박하기 이를 데 없는 현대인을 웃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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