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색깔은 진한분홍색'
'아버지의 색깔은 진한분홍색'
  • 장병수
  • 승인 2006.11.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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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디 고웠던 단풍잎으로, 노랑 은행잎으로 포근하게 감싸였던 나무도 어느새 앙상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문득 훌렁 벗겨진 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우리네 아버지의 색깔을 그려본다. 어쩌면 우리네 아버지의 색깔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열정으로 묻어난 빨강이 아니었을까? 아니 사회적 역할에 기계적으로 순응하며 책임감을 완수하기 위해 온 정열을 다 태워 버린 까만 숯덩이로 그려야 할까? 때로는 빨강으로 때로는 검정으로 물들어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존재의 의미’를 영화를 통해서 되새겨 본다.

 지난날 ‘아버지’는 사회의 중심이자, 가족의 중심으로써 허물어질 수 없는 성벽이었다. 그러나 몇 해 전 IMF가 닥쳤을 때, 아버지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과 역할은 급속하게 변해 버렸다. 사회적인 아버지와 가족적인 아버지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각종 매체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의 영향력은 상실되면서 급기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까지 묘사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가치와 역할이 혼돈 속에 빠져있을 때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는 우리에게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낳게 하였다. 즉 사회적인 희생과 가족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에 사로잡힌 기계적으로 내몰려진 아버지를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써 아버지로 수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내몰린 ‘아버지’라는 단어가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어졌는지 장길수 감독이 1997년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를 영화 <아버지>로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잠시 영화 ‘아버지’의 내용을 더듬어 보자. “만학도로서 인간승리를 보여준 주인공 정수는 중년의 성실한 가장이다. 그는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건강진단을 받게 된다. 뜻밖에도 췌장암 선고를 받은 정수는 자신의 병을 가족에게 숨기고 혼자 죽음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정수는 밀려오는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술독에 빠져 나날을 보내며, 가족과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마침내 가족들은 그의 친구로부터 가장인 정수의 병을 알게 되고 따듯한 마음을 보이나 결국 가족의 사랑을 뒤로 한 채 숨을 거둔다.” 당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소중한 아버지의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으며,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왔는지를 일깨워 준 좋은 작품이었다.

 동양에서와 같이 서양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빅토리오 데 시카라는 이탈리아 감독의 작품 ‘자전거 도둑’(1948)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업자 안토니오 리치는 포스터 붙이는 일자리를 얻었지만 삶의 도구인 자전거를 도난당하게 된다. 이후 아들 브루노와 함께 자전거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리치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힌다. 그는 아들 브루노를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전거를 한 대 훔쳐 달아나다 주인에게 잡혀 경찰에 인계된다. 이 장면을 아들인 브루노가 목격하게 된다. 풀려난 안토니오가 허탈한 모습으로 석양을 뒤로한 채 거리를 걷고 아들 브루노가 뒤를 따른다. 마지막에 안토니오의 손을 잡는 브루노의 클로즈업되는 손은, 사랑과 이해의 상징으로서 부자간의 정을 나타내는 전형이다.” 이 영화를 통해 ‘인생이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지만 그러나 그 가치는 있다’라는 명제를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잔잔하게 전해준다.

 서리 낀 창가에 비친 곧게 뻗어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때로는 파랑으로 때로는 빨강으로, 가끔은 검정이었을 아버지의 색깔을 떠올려 본다. 어쩌면 우리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결코 소홀함 없이 희생과 봉사를 한 몸에 배어있는 온화한 진한분홍색이 아닐까! 싸늘해진 오늘 아버지의 진한분홍색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껴보자.

<영화평론가·원광대 유럽어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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