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과 조류독감
영화 '괴물'과 조류독감
  • 김흥주
  • 승인 2006.12.06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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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익산이 조류독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확의 기쁨으로 풍요로운 초겨울을 보내야 하는 너른 들판이 온통 조류 바이러스를 퇴치하려는 하얀 위생복과 소독약, 그리고 ‘살처분’된 조류시체로 뒤덮여있다. 강의실에서도, 휴게실에서도, 연구실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넘쳐 난다. 자식처럼 키운 가축을 도살해야 하는 농민에 대한 걱정보다, 먹거리 신뢰가 땅에 떨어진 소비자에 대한 걱정보다, 혹여 치사율 100%라는 죽음의 질병이 나에게 옮기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걱정이다.

정부의 대응도 이례적으로 발 빠르다. 진원지 사방 3km 이내의 가축을 전량 살처분하고, 10km 이내의 가축에 대한 반출과 판매, 이동이 금지되고 있다.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격리벽이 철저하게 구축되어 있으며, 위험 지역을 통과하는 모든 차량은 소독약을 뒤집어써야 한다. 괴질도 아주 무서운 괴질이 강타한 지역 같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국무총리까지 나서 손수 삼계탕을 먹으면서 ‘끓여 먹으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홍보한다. 축산 농가에 대한 보호 차원이라고 한다.

신속한 격리와 철저한 검역망, 안전한 소비의 홍보. 이 정도면 소비자와 농민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이를 보면서 왜 지난 여름 영화 ‘괴물’을 보면서 느꼈던 분노가 되살아나는 것일까? 영화에서 국가는 철저한 격리와 배제, 그리고 하얀 위생복으로 무장한 의료과학을 통해 괴물에 대항하려 하였다. 근대성이 맹신하는 방법들이다. 그러나 감독은 그 해법을 역설적이게도 가족애, 활, 화염병, 창 등 전근대적 방법에서 찾았다. 근대성의 횡포가 만든 괴물을 과학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암시이자 요란만 떠는 국가에 대한 조롱이다. 조롱의 핵심은 여전히 근대의 신화에 매몰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성장제일주의이다.

성장주의의 폐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먹거리 자체가 지나치게 산업화ㆍ상품화되어간다는 것이다. 현대의 지배적인 먹거리 수급모델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기반으로 하는 포드주의 체제다. 대량생산을 위해 집단 사육을 하고 다량의 성장호르몬을 주입한다. 대량소비를 위해 식재료를 표준화하고 공장형 도살과 가공을 한다. 세계화를 주도하는 거대 농기업은 장거리 유통과 검역망을 피하기 위해 인체에 위해한 식품첨가제를 투입한다. 이른바 글로벌 푸드시스템이 제공하는 먹거리 실상이다.

집단사육과 성장호르몬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 체제는 여러 가지 환경재앙을 가져올 소지가 많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의 대량축산으로 야기되는 광우병의 등장이며, 조류의 집단사육으로 발병하는 조류독감의 등장이다. 생태주의자들은 이 모든 ‘재앙’이 예고된 결과이이며, 그 재앙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가축의 ‘집단사육’이라고 주장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의하면 가축의 집단사육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다. 하나는 항생제를 남용해 세균의 돌연변이가 잦아졌고, 다른 하나는 가축들에게서 색다른 바이러스가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었다. 의학자들 또한 많은 연구를 통해서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가축집단 사육장이 지독한 유행성 감기 바이러스를 변형시키는 ‘산실’임이 확인되었고, 돼지가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기 전에 조류 관련 바이러스나 인체 바이러스를 서로 혼합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아내었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급습이 바로 조류독감과 같은 괴질로 나타난 것이며, 글로벌 푸드 시스템은 이를 세계로 유포한 것이다. 병원균의 세계화과정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검역과 격리, 살처분만을 내세우는 조류독감 대응방식은 문제가 너무 많다. 더구나 식재료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인이 삼계탕을 먹는다고 소비자가 이에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웃음거리다.

근본적인 대책은 먹거리 체계를 바꾸는 일이다. 지역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함으로써 먹거리 이동거리를 최소화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확산을 통해 제철 산물이 제때 공급될 수 있으며,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생산자의 가치보전과 소비자의 안전욕구 충족이 이루어지는 먹거리 체계가 유일한 대안이다. 이를 통해 식재료의 안전성(safety), 우수한 품질(quality), 다양성(diversity)이 보장될 수 있다면 조류독감은 막을 수 있다. 나아가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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