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인생의 어미변화
41. 인생의 어미변화
  • 이원희
  • 승인 2006.12.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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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평생 역작인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 박사는 철학, 법학, 의학, 신학을 두루 섭렵한 학자이자 의사이고 신학자이다. 그의 학문은 중세의 모든 학문 분야를 망라한 것이니 그는 중세적인 입장에서 보면 모든 지식을 통섭한 지식인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소유한 지식만으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를 한다. 자신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우주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해박한 지식인 파우스트도 인간의 유한성에서 오는 슬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생명이나 우주의 신묘한 이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의 유한성을 가슴 아파하며 그는 외친다. ‘이 얼마나 장관이냐! 그러나 아! 슬프다 / 한갓 장관에 지나지 않는다.’ 대자연,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보면서도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니 인간은 완전자의 밖에 머물고 있는 국외자이며 단순한 방관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파우스트는 악마와 거래를 하면서까지도 지극히 닫혀진 존재인 인간을 이해하고 대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 평생 동안 자신을 달구었다.


 ‘인간의 참뜻이 무엇인지 말해주겠니? /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 머리 위에 반짝이는 금빛 나는 별엔 누가 살고 있는지? // 바람이 불어 구름은 쫓겨가고 / 파도는 영원토록 끊임없이 수군대고 / 별들은 아랑곳없이 싸늘하게 반짝이건만 / 그러나 못난이는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구나’ 독일 시인 하이네 역시 인간과 삶 그리고 우주의 오묘한 이치에 대한 궁금증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만해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를 연상시키는 이 시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신비와 더불어 왜소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존재의 어미변화를 꾀하며 부단히 노력하고 갈망하는지 모른다.


 70을 훌쩍 넘긴 이어령 씨가 엊그제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해 장안에 조용한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그는 이미 20대에 ‘저항의 문학’,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발표하며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초대 문화부장관을 역임하는 등 50대 때는 문화행정의 일을 보기도 한 그는 소설, 희곡, 에세이, 평론 등 문학의 여러 영역을 두루 넘나드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그런 그가 고희를 넘긴 나이에 이번에는 시인의 길을 열었다.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보다 훨씬 진리에 가깝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득한 까닭에서 소설에서 시로 길을 달리 했는지 모를 일이고, 시가 인간과 삶의 의미를 적실하게 표출하는 장르라고 판단해서 시를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그가 70이 넘도록 끊임없이 젊은이 못지않은 생의 열정을 피워내고 있다는 점이다. 손주의 재롱이나 받으며 숨차게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는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자기 이노베이션을 모색하며 인생의 어미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취업난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무엇을 해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해져 그저 쾡한 한숨만 내몰며 삶의 가벼움을 느낀다면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스스로를 바꾸는, 인생의 어미변화에 눈을 둬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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