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터 섬에 살던 사람들은 왜 사라졌는가?
이스터 섬에 살던 사람들은 왜 사라졌는가?
  • 김윤태
  • 승인 2006.12.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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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에 이스터라는 이름의 섬이 있다. 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인 로게벤이 부활절(Easter) 날에 이 섬을 발견한 후 이스터라고 불려졌다. 이스터 섬의 상징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면석상은 약 550개 있으며, 높이 1~30m에 이르는 거대한 것으로서, 대개는 해안을 따라 놓여졌다. 치밀한 응회암으로 만들어진 긴 귀, 뚫려 있는 코를 가진 머리와 어깨만의 상으로서, 디자인은 모두가 거의 비슷하다.

 이러한 거대한 석상은 누가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그리고 석상을 만든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러한 고고학적 문제를 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스터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722년 이전에는 최고 4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으나, 1862년의 노예사냥과, 그 뒤에 퍼진 천연두로 섬의 인구는 최저 111명까지 감소되었다.

 노르웨이의 인류학자 헤이에르달은 이 거석문화를 이룩한 사람들은 원주민과 다른 페루에서 온 인종일 것이라는 설을 세워 <아쿠아쿠>라는 책을 출간하였는데, 당대에 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러한 거석상의 제작에 필요한 목재나 줄로 쓸 만한 재료는 물론 돌을 운반할 동물도 없었기 때문에 섬 주민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위에 많은 거석상이 쓰러져 있는 이유도 불가사의하였다.

 이를 밝히려는 고고학 및 고생물학의 연구 조사 결과 최초의 원주민이 거주한 연대는 400~700년으로 나타났으며, 거석상은 1200~1500년에 조각되었음이 밝혀졌다. 운반에 필요한 목재에 관한 연구는 화분 분석을 통하여 해결되었다. 늪지나 못의 바닥에서 수직으로 잘라낸 잔해물층에 있는 수천 가지의 화분을 분석해보니, 30만 년 이전부터 아열대 수림이 우거져 있었던 흔적이 발굴되었다.

 2004년 미국의 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어먼드가 출간한 <문명의 붕괴>은 이스터 섬의 붕괴에 대해 좀 더 사회학적 설명을 제공한다. 당시 이스터 섬의 지배계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종교적 목적으로 석상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때 풍요로웠던 섬은 서로 먹고, 할퀴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석상을 운반하기 위해 나무들이 잘렸고, 농지가 줄어들었다. 인구는 많아지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급급했다. 전쟁이 일어났고, 식량이 부족해 식인 풍습도 생겼다.

 그들은 경쟁 부족의 석상을 쓰러뜨리거나 석상의 머리를 부수는 방법으로 증오심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나무를 베어냈고, 결국 나무는 더 자라지 않았다. 숲이 사라짐에 따라 토양도 황폐해져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다. 결국 석상만 남긴 채 사람들은 사라져갔다. 이스터 섬의 마지막 나무를 베었던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환경의 파괴가 어떻게 문명의 붕괴를 가져오는지 잘 알게 되었다. 인류는 지금도 똑 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제레드 다이어먼드는 르완다. 도미니카, 아이티, 중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 곳곳에서 나무가 잘려나가고 숲이 사라지면서 사막이 늘어나고 있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넘치고 끊임없이 도로가 건설되고 있으며 도시에는 소음과 매연이 가득 차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전체에서 똑 같은 오류를 동시에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양대학교 사회학 교수, 전 국회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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