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제
  • 이보원
  • 승인 2006.12.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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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세밑이다.

 도내 기자들 사이에서는 1년 내내 잊고 지내다 연말이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과연 올해에도 그가 올까. 바로 며칠 전 전주시내 한 동사무소에 현금쇼핑봉투를 몰래 놓고 간 얼굴없는 천사의 가슴 따뜻한 얘기다.올해도 그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실천했다.

 지난 21일 낮 전주시 노송동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지하주차장 입구에 가보라’는 말을 남긴 채.

 얼굴없는 천사가 두고 간 쇼핑백 안에는 “불우한 이웃에게 저희 가족의 작은 정성을 나눌 수 있어 너무 기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는 메모와 함께 851만 원이 들어있었다. 올해로 7년째.

 익명으로 금쪽같은 성금을 기탁한 미담사례는 또 있다.

 이달 7일 전주 서서학동사무소에도 붕어빵 노점을 하는 40대 남자가 찾아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5만 원을 맡기고 사라졌다. 추운 골목길에서 붕어빵을 구어 번 돈을 선뜻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한 그의 갸륵한 선행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거리엔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전해오는 훈훈한 미담은 우리 사회에 온정의 불씨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하지만 없는 사람의 심정은 없는 사람이 더 잘 알아서일까. 일부 서민들의 선행과 미담은 줄을 잇는 반면 부유층이나 가진 사람들의 기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등이 분석한 우리 나라의 성금모금액 결과를 보면 개인과 기업의 비중이 4대6의 비율로 아직껏 사랑의 온도계라고 할 수 있는 기부문화는 대중화되지 못했다고 한다.

 기부문화가 꽃핀 미국에서는 전체 가구의 89%가 기부에 참여한 반면 기업 기부금 비율은 4.3%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인의 1인당 기부금액도 2백만 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1인당 기부금액은 채 10만 원이 되지 않고 한국인의 43%는 단 한 번도 기부를 해본 적이 없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미국의 기부문화가 확산한 데는 기업체들이 실천한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이 그 모태가 되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 기부문화의 상징인 앤드류 카네기는 철강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전재산의 95%를 사회에 환원했다.

 “부자로 죽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는 유명한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도 모자라 기부 대가로 정부가 세금을 감면해 주려하자 손사래를 쳤다.

 세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기업에 쏠리는 부정적 시각을 차단하고 국민의 복지 서비스가 향상돼 국민이 잘살아야만 제품 구매로 이어져 경제도 산다는 믿음 때문이다.

재벌들의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려는 금산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극소수 지분을 가지고 순환출자를 통해 거대 재벌을 쥐락 펴락해 왔던 재벌들의 왜곡된 소유지배구조,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핏줄에게 부를 대물림해 주려는 우리의 후진적 기업풍토도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이제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을 보여줘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보편적 진리로 자리잡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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