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시대...‘복잡계 과학’
복잡한시대...‘복잡계 과학’
  • 김인수
  • 승인 2007.01.18 1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응용수학자 덩컨 와츠 교수는 자신의 연구 과제를 통하여 1998년에 할리우드와 관계된 배우 21만 명의 관계를 조사했다. 공동 출연작이 있는 배우들 사이에 줄을 긋는 식으로 연계 도표를 만들고 전체 연계 구조의 성질을 분석한 것이다. 그런 것은 사회학자나 할 일이지 이공계 학자로서는 외도가 아닌가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논문은 세계 최고 권위의 자연과학 학술지인 네이처 논문집에 실렸다. 또한 이탈리아 팔레르모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만테냐 교수 역시 그의 연구 분야는 미국 주식시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한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다른 기업들의 주가는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연구해 유럽의 물리학 회지에 저널에 발표했다.

 저명한 자연과학 학술지인 네이처는 2001년 6월 스웨덴 사람들은 서로 성관계가 어떻게 맺어졌는가? 라는 논문이 게재됐다. 스웨덴 사람들의 성관계 네트워크 연구에서는 그 수학적 구조가 인터넷의 www 네트워크와 같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야후 같은 몇몇 주요 사이트를 중심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듯한 구조가 인간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또한, 이런 것은 에이즈 등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분석해 누가 이를 열심히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인지 찾아내는 데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 보균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다른 보균자들의 관계에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연구를 스톡홀름대 사회학과 프레드릭 릴제로스 교수가 시도하여 많은 관심을 받은 연구이다. 언뜻 보면 물리학자들이 사회. 경제학 논문을 쓰고, 자연과학 학술지도 사회과학으로 보이는 논문을 싣는 등 외도를 일삼는 것 같은 사례들이다.

 순수과학이 홀대받기는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여서 인기 좀 끌어보려고 대중의 관심거리인 영화, 주식, IT를 연구하고, 네이처 라는 순수학문 논문집도 선정적인 논문을 싣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위의 논문들은 최신에 각광을 받고 있는 복잡계 과학이라는 분야의 연구 결과들이다. 흔히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라고 한다.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시오자와 요시노리는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21세기 들어 물질·자본 중심의 산업사회에서 지식·정보 중심의 기반사회로 넘어가며 질서에서 혼돈으로, 대립에서 융합과 포용으로, 정적 세계에서 역동성으로, 수직·획일성에서 수평·자기조직성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복잡계 과학은 수학과 물리학을 이용해 이런 복잡계의 성질을 찾아내고, 미래에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학문이다. 복잡계 과학은 복잡계를 다룰 수 있는 수학을 만들어 낸 80년대 중반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그 뒤 점점 발전해 지금은 환율 변동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됐고, 더욱 복잡한 주식시장이나 사회 속의 인간관계 등도 기본 성질을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수학과 물리학의 원리를 이용해 경제, 사회, 생명과학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복잡계 과학의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복잡계 과학이란 새로운 학문이 과학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각 나라마다 복잡계 전문연구소가 세워지는가 하면, 미국 미시간 주립대처럼 복잡계 학과를 설치하는 곳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복잡계란 글자 그대로 수많은 구성 요소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상을 상호작용하면서 어떻게 변해갈지를 예측하는 연구 분야이다.

 개미군단과 기관, 외국인이 투자 게임을 벌이는 주식시장,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 수 억대 컴퓨터가 연결된 인터넷 네트워크가 모두 복잡계가 연구하는 대상인 것이다. 주가지수나 환율의 변화, 인간 공동체가 생기는 과정, 1조개의 신경세포들이 모인 두뇌의 작용 등이 모두 복잡계 과학의 탐구 대상이다.

 유럽연합(EU)은 유럽의 완전한 통합을 뒷받침할 과학 분야 중 하나로 '복잡계 과학'을 들고 있다. 복잡계 과학의 힘으로 경제와 사회, 정보통신. 네트워크 등을 합칠 때 일어날 문제들을 예견하고, 해결책을 구할 수 있으며, 또 애초에 문제를 제일 적게 일으키는 통합 방안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은 복잡계 과학이 갓 태어난 데 불과해 유럽 통합에의 활용을 위해 이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쪽으로 EU는 방침을 정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