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분열의 역사는 반복되는가?
정당 분열의 역사는 반복되는가?
  • 김윤태
  • 승인 2007.01.25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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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당의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한민당의 근거지는 호남이었다. 한민당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송진우, 김성수, 김병로, 백관수, 김준연은 모두 호남 출신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친일 전력이 있었으며 지주 출신과 부유층이 많아서 큰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수립할 때 한민당을 이용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귀족당’ 대신 ‘상놈당’을 만들겠다며 자유당을 창당했다. 야당의 처지가 된 한민당은 그 후부터 오랫동안 ‘만년야당’이 되었다.

 한국 야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수많은 파벌과 끝없는 분열이었다. 한민당-민국당-민주당으로 이어왔던 야당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이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파벌로 분열하여 독재정권의 등장과 집권연장을 막을 수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1960년 4.19 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의 신파와 구파의 분열이다. 윤보선이 이끄는 구파와 장면이 이끄는 신파로 갈라져 권력투쟁이 벌어지면서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미리 제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시작되었을 때 김대중과 김영삼은 분열되었고, 결국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권력을 거머쥐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으나, 김대중과 김영삼이 또 다시 분열되어 대선에서는 군사정부의 2인자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한국 야당이 분열 대신 통합을 이룰 때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1955년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에 맞서 신익회, 장면, 조병옥이 결성한 민주당은 4.19혁명 이후 집권에 성공했다. 민주당은 독립운동을 했던 신익회를 내세우고 카톨릭, 흥사단 출신과 협력하여 도시에서 새로운 지지기반을 확대했다. 비록 민주당의 정당 이념은 보수적이었으나, 친일지주의 정당의 이미지에서 도시중산층의 정당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1976년 민주당을 계승한 신민당의 김대중과 김영삼이 협력하여 박정희 군사정부에 타협적이었던 이철승과 맞서면서 유신정권이 무너졌다. 1985년 재야의 김대중과 김영삼이 전두환 군사정부에 순응했던 민한당에 합류하지 않고 신한민주당을 만들었을 때 2.12총선에서 야당의 돌풍이 일어났다. 야당이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통합을 이룰 때 강력한 정치세력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통합이 반드시 성공한 것은 아니다. 1991년 ‘야권통합’을 위해 김대중과 이기택이 민주당을 만들고, 2000년 ‘민주개혁통합’을 위해 김대중, 노무현, 이인제가 함께 모여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했지만, 모두 패권적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정당의 분열이 창조적 파괴를 가져온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1986년 김대중, 김영삼이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을 때 대통령직선제라는 명분을 가지고 성공했다. 반면에 2003년 천정배, 정동영, 신기남이 주도한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탈지역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합집산을 반복한 한국 정당의 역사가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야당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서서히 기득권을 유지하는 보수세력에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중도개혁세력으로 변화했다. 이처럼 정당의 분열은 정치세력의 약화로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노선과 정책을 통한 세력의 재편이라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최근 열린우리당은 ‘신당파’와 ‘사수파’의 갈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바닥을 기는 형편에서 나온 고육책이지만, 어느 길을 선택해도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도 기회가 올 수 있다. 지금은 새로운 한국의 전망을 제시할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의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도전에 대응하여 지속가능한 성장과 복지국가,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룰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또 다시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새로운 실험대에 섰다.

<건양대학교 사회학 교수·‘한국의 전망’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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