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평화학
숨쉬는 평화학
  • 이승헌
  • 승인 2007.01.2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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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지구촌은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에서는 이라크에 미군을 증파하는 문제가 주요현안이 되었고, '북핵'문제도 여전히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도 인류는 평화롭지 못하다.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 전쟁의 위협에 더욱더 시달리게 되는 듯하다. 아직도 계속되는 이라크 전쟁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평화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 평화를 원하는가? 평화는 왜 필요한가? 너무 당연해 굳이 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 같지만, 정작 우리는 평화에 대한 분명한 정의조차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

 나라마다 종교마다 집단마다 제각기 원하는 평화는 있을지 모르나 인류 전체가 동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평화의 정의는 아직 없다. 국가나 종교를 중심으로 한 평화,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을 중심으로 한 평화는 불완전한 평화이다.

 국가나 종교를 중심으로 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 가장 큰 분쟁의 요인이 되어왔음을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류의 의식이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의 한계를 넘지 못할 때, 그래서 각자 자기의 기준에서 자신이 원하는 평화를 고집할 때 그것은 결국 평화와는 거리가 먼 분쟁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만다.

 진정한 평화는 우리의 생명이고 호흡이다. 호흡은 생명의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들숨과 날숨, 확산과 수렴이 율동적으로 반복되는 호흡 운동은 생명이 어떻게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며 변화 가운데서도 안정을 유지하는지를 보여준다. 호흡은 그 자체가 완벽한 순환이고 리듬이며 균형이다. 이러한 순환과 리듬과 균형 속에 가장 차원 높은 질서인 '생명'이 유지된다.

 한 개인의 삶이나 한 국가의 역사, 크게 보면 한 종의 생명까지도 결국 그러한 리듬을 따라 움직인다. 하나의 생명체가 얼마나 건강하게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지는 결국 이 리듬을 얼마나 조화롭게 유지하는지에 달려 있다. 한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인류 전체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호흡의 법칙이 지켜질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듯, 이 법칙이 사회적인 차원에서 지켜질 때 사회가 건강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

 평화는 숨처럼 쉽고 자연스럽고 편하며 가까이에 존재한다. 평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적인 주제나 종교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호흡이고 생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는 누구나 찾을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다. 동시에 평화는 누구에게나 호흡만큼이나 필요하고 절실한 것이다.

 밥을 안 먹고도 며칠 정도는 견딜 수 있지만 숨을 안 쉬고는 단 몇 분도 견디기 힘들다. 평화는 우리에게 숨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다. 평화는 누구에게나 삶의 목적이고 동시에 삶의 기반이다. 그래서 인류는 항상 평화를 갈망하는 것이다.

 지금 인류의 삶은 호흡의 지혜와 거리가 멀다. 우리는 지금 소유와 지배라는 외적인 성장을 절대 진리인양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항상 비교와 경쟁, 승패가 따른다.

 성장의 욕구는 무한한데 지배하고 소유할 대상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외적인 성장은 결국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성장을 추구하면 할수록 생태계는 파괴되고 자원은 줄어들고 환경은 오염되고 정신은 황폐해진다. 이는 내쉬지는 않으면서 계속 들이마시기만 하는 것과 같다. 날숨 없이 들숨만 계속한다면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호흡의 법칙에 따라 들숨에서 날숨으로 바꾸어야 할 때다.

 내쉬고 비웠을 때 다시 들이마실 수 있고 그러한 리듬 속에 생명이 이어진다. 이러한 생명의 법칙이 지켜질 때 개인도 사회도 건강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숨쉬는 평화학'이다.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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