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정치는 행복을 부른다
상생의 정치는 행복을 부른다
  • 이인철
  • 승인 2007.01.31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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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년에 들어서자 벌써부터 대선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여당은 통합신당이냐 당 사수냐를 놓고 연일 계파간 서로 네 탓이라며 설전이 오가는가하면 끝내는 탈당 파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야당대로 대선 후보들끼리 검증문제를 놓고 낯 뜨거운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설전은 적어도 대통령을 뽑기까지 올 한해 내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다보니 국민들은 어디에 판단기준을 맞추어야 할지도 모른 채 혼란스럽기만 하다.

 말인즉,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자기들 정권욕에 국민만 놀아나는 꼴이다.

 우리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들의 삶의 목표는 어디에 있을까?

 티베트의 성자 달라이라마는 우리의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또는 어떤 종교를 숭배하든 우리 모두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헤르만헤세도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행복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불만과 고뇌는 끊이지 않는다. 속담에 “남의 염병은 제 고뿔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변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진리인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하다 할 수 있는가?

 이는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을 비교해보면 알수가 있다. 심리학자들이 본 불행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사회에서 종종 외톨이가 되며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을 갖기 쉽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들은 대개가 친해지기가 쉽고 마음이 넓으며 창조적이고 나아가 불행한 사람보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보다 애정이 풍부하고 용서를 잘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달라이라마도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를 하라고 권한다.

 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내 자신의 마음이 평화만 깨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요즘 정치인들이 새겨두어야 할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더구나 돈과 명예는 행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단정한다.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건강과 재산을 남을 돕는데 이용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가르침이다.

 연일 비방과 폭로전이 계속되는 대선정국, 이런 혼탁한 분위기속에 과연 우리는 어떠한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 즉 먼저 용서 할줄 알고 또 국민을 위해서 돈과 명예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힌두교의 3대 경전중 하나이며 인도인의 정신적 참고서인 바가바드기타에도 용감한 사람을 보기를 원한다면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을 보라, 영웅을 보기를 원한다면 미움을 사랑으로 되돌려 보내는 사람을 보라고 했다. 선택은 유권자에게 달려있다.

<도민일보 익산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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