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와 김종규
율곡 이이와 김종규
  • 태조로
  • 승인 2007.02.0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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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2년, 병조 판서에 임명된 율곡은 국방력 강화를 위해 ‘양군민’(養軍民) 등 ‘6조계’를 제안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양병십만론을 제기한다. ‘십년이 못 돼 땅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이니 미리 십만의 군사를 길러서 위급한 때의 방비를 삼지 아니하고 갑자기 변이 일어날 경우 백성들을 내몰아 싸우게 하면 전쟁에 지고 말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당시 율곡의 개혁론에 이의를 제기하던 동인 측의 수장인 유성룡은 “평화 시에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호랑이를 길러 우환을 남기는 것과 같다.”라며 반대했다.

 이렇게 해서 율곡의 십만양병론은 실현되지 못하였고, 십년 후에 조선은 무방비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당하고 말았으니, 비록 선견지명이라도 수용할 그릇을 갖추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치 돼지 앞의 진주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 허균은 “이이의 선견을 헤아려 난리를 예방하기 위한 개혁을 하였다면 역사가 바뀌고 백성들의 목숨을 그렇게 많이 잃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고, 반대의 선봉에 섰던 유성룡조차도 왜란이 끝난 후에 ‘징비록’이란 책에서 “만일 율곡의 말을 시행하였다면 나라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랴. 당시 그의 계책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의 말이 모두 들어맞는다.”라고 말하면서 율곡의 선견적인 제안을 수용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2003년 7월에 부안 땅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재정자립도가 12%에 불과하고, 65세 이상 고령층이 전체 인구의 21%가 넘으며, 이농현상으로 연 평균 2천여 명이 고향을 떠나는 상황에서 낙후된 부안을 살리기 위해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시설 유치를 신청했다가 호된 홍역을 앓았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역발전이라는 소신을 갖고 20년 가까이 표류하던 방폐장을 부안에 유치하겠다고 나선 김종규 전 부안군수를 율곡에 비하고, 지역 발전보다는 님비(NIMBY)현상에만 충실했던 일부 주민들을 유성룡과 동인세력에 비한다면 견강부회라고 탓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3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아물지 않은 부안의 상처를 밑거름 삼아 방폐장 유치에 성공한 경주시민들의 환호와 한수원 본사 이전 지역 결정 등의 영향으로 벌써 5천여 명의 인구가 늘었다는 풍문 등을 놓고 볼 때에 적어도 김 전 군수의 당시 선택은 부안 발전을 위한 선견적인 용단이었음을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만일 당시 김 전 군수가 지역 발전을 위해서 모험을 하지 않고 주민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선심정책만 펼쳤다면 재선은 무난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군수는 낙후된 지역발전을 위해 혐오시설이기는 하지만 방폐장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고 당시 정부에서 공고한 절차에 따라 유치신청을 했지만 그에 따른 역풍이 엄청났다. 먼저 신체적으로는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의 폭행을 당했으며, 정신적으로는 매향노니 핵종규니 하는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감내해야 했고, 정치적으로는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는 등 큰 아픔을 맛보아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격려까지 했었던 정부에서는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단체장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라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그것은 주민들끼리의 싸움이었으니 알아서 해결하라.’라는 식의 배신까지 당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퇴임 직전까지 수차례의 건의와 설득을 통해 관련자 45명에 대한 사면조치를 비롯하여 신재생 에너지 테마 파크 유치 등 부안의 새로운 성장 동력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제 방폐장 문제도 일단락됐고, 반대자들이 그토록 원하던 김 전 군수의 퇴진도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이미 정치적 심판을 받은 자연인 김종규에게 더 이상 돌팔매질을 하는 일은 너무 가혹하다. 현재 부안은 찬반 주민사이에 남북이나 동서의 대립 못지않은 갈등이 계속되고 있으면서도, 지난날 율곡의 십만양병론을 거부하고 전국토가 왜구에 유린당한 후에야 뒤늦게 터졌던 통한의 탄식과 같은 후회가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도록 부안의 상처 치유와 발전을 위해 온 도민이 관심을 가져야 하며 정부에서도 합당한 보상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바람이 몹시 불 때만 출렁일 뿐 평소에는 얌전한 변산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아량과 지혜와 덕을 배우며,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회한과 설움을 다스리려고 노력한다”는 김 전 군수의 독백을 통해 진심이 왜곡되어지고 거부당한 자만이 맛봐야 하는 고뇌를 어렴풋이나마 느껴본다.

<(사)부안동부복지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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