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되면 조상 탓?
잘못되면 조상 탓?
  • 김윤태
  • 승인 2007.02.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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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동안 가족들이 모여 오순도순 정담을 나눴다. 집안의 어른들은 건강하신지,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는지, 처녀총각들이 결혼을 하는지,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취직이 안 되고, 집값과 세금이 오른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이 안 좋았다. 특히 생활이 어려운 서민 살림에는 걱정이 많았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가난한 가정에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식시장과 금융기관의 자유화로 투기성 소득이 늘어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비정규직 비율과 임금격차가 커지면서 빈부격차가 급격하게 커졌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이러한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06년 12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자기 세대에 노력하면 다음 세대에 자기 가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3년 전에 비해 52%에서 46%로 줄었다. 자기가 노력을 해도 계층상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9%에서 28%로 늘어났다.

 1997년 영국의 부총리인 존 프레스코트은 노동조합 간부 출신인데,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고액의 월급을 받고 볼보 승용차를 타고 다니니 이제 중간계급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음 날 신문에 프레스코트의 아버지가 나타나 ‘내 아들은 중간계급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다’고 한 말이 대서특필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계급사회로 고착화된 영국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아들은 영원히 노동자계급이 되어야한다는 사고가 뿌리내린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계급구조가 고착되면 지위상승의 욕구가 줄어들고 경제적 활력도 약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농민들이 자식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소를 팔고, 너도나도 도시로 갔던 것은 더 나은 교육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좋은 보수를 받는 직장을 얻으면 누구나 중산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식이 잘 되면 온 가족이 지위상승을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역동성을 주고 경제에도 도움이 되었다. ‘가난은 조상 탓’이라 생각하고 체념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올해 1월 국정홍보처의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성공하려면 집안이나 연줄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87.3%에 달한다. 게다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난 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53.4%로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70%에 달했던 것에 비교된다.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경기부진과 집값상승으로 소외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감소하면 빈부격차가 커지고 계층갈등이 악화되어 사회불안과 사회해체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경제성장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경제성장의 혜택이 모든 계층에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경제성장을 통한 고용창출에도 힘을 쏟아야하지만 복지국가를 강화해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나치게 자유시장에 맡겨버린 부동산, 교육, 의료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가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사교육의 격차로 경쟁에서 뒤떨어진다면 가난의 대물림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처럼 결과의 평등을 적절하게 추구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기회의 평등도 추구할 수도 없다. 정부는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결과의 평등을 위한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되는 경기부진과 양극화로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건양대학교 사회학 교수, 계간 <한국의 전망>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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