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달의 문화를 그리워하며
초달의 문화를 그리워하며
  • 박규선
  • 승인 2007.03.0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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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아버님께서 작고 하셨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늘 자식만을 위하시던 하늘같은 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 느낀다. 어릴 적 아버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선비가 피나는 노력 끝에 장원급제를 하여 금의환향하면서 고향 마을이 보이는 고갯마루에 이르자 갑자기 말에서 내려서더니 숲으로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가보니, 싸리나무에 대고 큰 절을 올리며 “이 싸리나무 회초리가 아니었으면 어찌 오늘의 내가 있었겠는가?" 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님께서는 너 잘되라고 하는 꾸중을 달게 받으라고 하셨다.

 체벌 문제가 시끄러울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고 회초리의 고마움을 잊고 있는 세상이 안타까웠다. 교사나 부모가 감정이 격해져서 폭력에 가까운 체벌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 안 되는 일이지만, 한 다발의 회초리를 꺾어다 놓고 아이들을 바른 길로 가르치는 엄한 부모나 스승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에는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체벌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매라는 명분으로 폭력이 자행되는 것을 우려한다. 또 맞는 당사자들은 그 누구도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고 주장한다. 설령 자기를 낳아준 부모라 해도 때리는 행위는 인권 유린이라고 항변한다. 그들에게 가르침의 매는 당연히 타인의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매의 교육 효과는 생각보다 적다고 한다. 오히려 매 맞고 자란 아이가 폭력적으로 자랄 위험성도 크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매를 들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엄한 회초리 몇 대가 보약보다 더 귀한 약이 되는 경우가 있고, 말보다 매가 더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성향의 아이들이 있다. 무조건 체벌은 안 된다는 것은 교육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다만 화가 나는 마음으로 매를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매를 들 때는 아이가 납득하는 상황이어야 하고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어야 하며, 매를 들고 나서는 반드시 사랑의 매인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나 역시 어렸을 때 꽤나 짓궂었던 악동이었으니만큼 심심찮게 회초리를 맞고 자랐다. 때로는 회초리가 감정이 개입된 ‘매질’로 변한 것을 맞아도 보았고, 또 학생을 가르치면서 매로 때려도 보았다. ‘매질을 당할’ 때는 억울했으며, 매질을 하고 나면 부끄러웠다. 그래서 ‘사랑의 매’로 시작했지만 ‘매질’이 되어 버리고 만 회초리를 그 이후로 다시는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어린 나이였어도 매를 맞을 때 ‘사랑의 매’와 ‘폭력의 매질’은 구별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나 스승님께 회초리로 엄하게 혼날 때 그 순간 두렵고 아팠지만 내 잘못이 확실한데다 부모님과 스승님께서 나를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받아들였었다. 내 잘못을 보다 확실하게 깨닫고 매가 아팠던 만큼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 뿐 아니라, 억울하게 맞았다고 생각했던 매질도 나이가 들수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몰랐던 매질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감사하게도 모욕적인 기분이 들만큼 부당한 매질을 당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 교원 평가 문제로 뜨겁다. 학부모들과는 달리 많은 교사들은 교원의 질을 향상시키는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니 그 평가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과연 사랑의 매를 들려고 하는 교사가 과연 있겠느냐고 한숨을 쉬기도 한다.

 부모에게조차 회초리는커녕 왕자 공주처럼 떠받들며 자라난 요즘 아이들에게 교사가 회초리를 대는 일이 과연 우리 세대들처럼 받아들여질까 걱정스럽다. 그러나 가르침에 있어 당장의 반응만 따진다면 멀리 보고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어렸을 적 들었던 아버님의 옛날이야기가 오늘따라 더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일까?

<도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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