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앞으로 가야한다
진보는 앞으로 가야한다
  • 김윤태
  • 승인 2007.03.21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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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진보에 관한 다양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대학교 최장집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제대로 이룩하지 못해 진보세력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노무현 대통령은 ‘경직된 진보’를 비판하면서 ‘유연한 진보’를 주장했다. 민주노동당은 아예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모두 진보라는 말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과연 진보란 무엇인가? 진보란 말은 원래 서유럽의 발명품이다. 고대 인도에서는 시간이 순환한다고 생각했고, 중국에서는 과거보다 현재가 나빠졌다고 생각했다. 우리 조상들은 미래란 ‘하늘의 뜻’이거나 ‘팔자소관’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18세기에 서양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신뢰하는 계몽주의 철학이 등장하였다. 인간의 노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19세기의 진보적 사상은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 자본주의를 보호하려는 ‘자유주의’이었다. 자본주의는 전통사회의 제도와 가치를 무자비하게 파괴했다.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들을 기아와 빈곤에서 벗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은 자유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믿는 자유주의에 일격을 가했다. 그 후 사회적 평등과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는 ‘사회주의’가 새로운 진보를 자처하고 나섰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획일적 평등주의와 계획경제는 더 이상 매력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20세기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대결은 사라졌지만 21세기에는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이념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대처와 레이건이 주장한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시장을 찬양하는 반면, 블레어와 쉬뢰더가 주장한 현대적 사회민주주의는 공공서비스 보호와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하지만 21세기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혼란으로 우리를 이끈다.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19세기에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 진보가 되었지만 21세기에는 보수가 되었다. 20세기에 계획경제를 강조하면 진보가 되었지만 21세기에는 보수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시대에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보수이념이 되었고 사회민주주의가 새로운 진보이념을 자처하지만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모두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가 산업혁명 이후 200여 년 동안 잊혀졌다. 개발과 성장만이 능사가 아니다. 환경호르몬이 있는 아파트가 늘어날수록 아토피는 계속되고 자동차를 더 많이 사용할수록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여성의 사회참여에 걸맞는 사회적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담을 떠안고 사교육비가 하늘로 치솟을수록 여성의 삶의 질은 나빠지고 출산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다. 경제성장은 좋지만 환경을 파괴하고 여성을 무시하는 양적 성장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경제적 양극화 해결과 결과의 평등을 강조한다. 하지만 미래의 진보세력은 현금 급여를 통해 빈곤층을 도와주는 전통적 복지 대신 개인들이 스스로 능력을 키워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소득 2만달러, 3만달러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생태적 가치와 여성의 권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 새로운 진보의 기준은 여성과 가족을 위한 복지와 환경친화적 개발을 주장하는 공약이 부각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의 사회활동을 돕기 위해 야동 보육과 교육의 사회화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환경호르몬을 줄이는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1960년대처럼 5% 또는 7% 운운하며 경제성장 수치로 대선후보가 되려는 생각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생각이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건양대 사회학 교수, ‘한국의 전망’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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