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포인트’와 이라크 파병
영화 ‘알포인트’와 이라크 파병
  • 장병수
  • 승인 2007.03.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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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대 유럽의 암울했던 상황을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잘 반영하고 있다.

 이때부터 공포 영화는 태동하게 되었는데 ‘갈리가리 박사의 밀실’(로버트 비네), ‘노스페라투’(무르나우) 등은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 정신을 회화적인 기법과 조명을 이용하여 적절하게 표현했다. 스릴러 영화라고도 하는 공포 영화는 유령이 등장하는 괴기 영화,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는 오컬트영화(occult film), 충격적인 공포와 전율에 역점을 둔 호러 영화 등이 있다.

 이러한 공포 영화는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 등과 같은 공포 영화의 고전을 낳게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유행한 추리소설의 덕분에 공포 영화라는 장르가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국 공포 영화의 특징은 소녀들의 날카로운 비명에 의한 호러퀸들의 활동을 주무대로 삼았다.

 ‘장화 홍련’, ‘폰’, ‘여고괴담’ 그리고 ‘령’ 등과 같은 영화들은 소녀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그러나 기존의 호러 영화에서 보여준 소녀 이야기에서 느낄 수 없는 거칠고, 더 소름끼치는 남성들의 죽음으로 공포감을 증폭시켜 나가는 ‘알포인트’(감독 공수창)는 한국 호러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 사라진 자와 추적하는 자, 그리고 유령이 되어 떠도는 자들이 전쟁터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뒤엉키게 된다.

 사실 공수창이란 이름만으로도 이 영화가 공포 영화일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알포인트’로 감독 데뷔한 공수창 감독은 오래전부터 ‘하얀전쟁’, ‘텔미 썸딩’과 ‘링’ 등과 같은 전쟁 영화나 공포 영화의 각본을 즐겨 써왔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미 전쟁과 공포의 장르적 특성에 익숙해 있었던 관계로 ‘알포인트’에서도 전복과 반전, 뻔하지 않은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을 보여 주고 있다.

  영화 ‘알포인트’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바로 사느냐 죽느냐, 귀향하느냐 못 하느냐의 치명적인 갈림길에서 새로운 전쟁은 시작되고, 병사들이 실종되기 위해서 떠난다는 역설로부터 말문을 연다. 최태인 중위(감우성)를 비롯한 8명의 병사들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귀국이 지연된 채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1972년 2월 2일 밤 10시 사단본부 통신부대의 무전기에 “당나귀 삼공...”을 외치는 비명이 들려온다. 이 신호는 6개월 전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일명 알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8명의 수색대원들로부터 걸려 오는 구조 요청이다.

 그 흔적 없는 병사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9명의 병사가 급조되어 그곳으로 파견된다. 그러나 알포인트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불길한 징조가 포착된다. 9명의 병사가 첫 야영지에서 10명의 병사로 되고, 또한 알포인트 입구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血不歸!(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라는 적혀있다.

 하루 하루 아무런 진척도 없는 상황에서 더욱 더 엄습해오는 공포는 그들을 사면초가로 몰고 간다. 대낮에 사라진 병사들의 뒷모습의 환상을 목격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를 장식한다. ‘알포인트’의 핵심은 결국 끊임없이 꺼져가는 개인들을 보여준다.

  ‘알포인트’의 중심 사건이 된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 국군은 약 10년 동안 32만 명이 파병되었으며, 이중 약 5천 명이 사망을 했고, 7명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피해 규모로 볼 때 영화 ‘알포인트’는 이라크 파병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는 현 상황에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연 ‘베트남 전쟁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남겼는가?’를 깊이 생각하며 지금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사려 깊은 판단이 요구된다.

<영화평론가·원광대 유럽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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