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미래가 암울하다
농업의 미래가 암울하다
  • 김흥주
  • 승인 2007.04.0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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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다. 앞으로 국회 비준 절차가 남아 있고, 진보세력과 농민단체의 반대가 거세지만 참여정부 출범이래 처음으로 재계와 보수언론이 환영일색인 것을 보니 그대로 진행될 듯 하다. 이번 협정 체결로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을 분야가 농업분야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농업에 대한 지원대책을 충분히 마련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정부 대책은 경쟁력이 있는 농가는 전업농으로 육성하여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반면에 고령화 등으로 경쟁력이 없는 농가는 복지제도를 강화해 생활을 보장하겠다고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른바 ‘맞춤형’으로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농업에 대한 정부시각이 얼마나 편협하며, 대책 또한 얼마나 고루한 가를 알 수 있다. 다음 세 가지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첫째, 세계 시장에 경쟁할 수 있는 전업농을 육성하겠다는 논리는 그동안 농산물 시장개방을 이끌었던 규모의 경제와 기술농업의 환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지난 90년대 UR 이후 우리 농정의 핵심은 규모 있는 전업농을 육성하여 경쟁력을 키우고, 우수한 농업기술로 고부가가치 농업 ‘상품’을 만들어 세계 농산물 시장의 주역으로 우뚝 서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 동안 정부는 수백조원의 자금을 농업구조개선 사업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지금 농가가 안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상품이 아니라 농가당 수천 만 원의 시설형 부채일 뿐이다. 이유는 한 가지, 농산물은 휴대폰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소규모 영세농이나 고령 농가에게는 복지제도를 통해 생활을 보장하겠는 대책도 지난 90년대 이후 농정에서 빠지지 않는 부분이다. 그 동안 정부는 ‘농업인’ 복지라는 새로운 복지모델까지 제시하면서 농민의 생활보장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60년대 군사정권의 명분을 찾기 위해 허울뿐인 복지제도를 남발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농업인 복지모델 또한 재원도 없고, 복지서비스 인프라도 없으며, 그나마 있는 제도들 또한 농가와 농민의 특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수년째 농업인 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들이야 말로 철저하게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말이 앞서기 때문이다.

셋째, 농업을 지나치게 경제 논리로만 파악하기 때문에 농업이 가지는 여러 가지 공익적 기능, 그 중에서도 특히 안전한 먹거리 생산이라는 사회문화적 중요성이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자국 국민의 먹거리 안전성을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광우병 발생을 기점으로 농업생산의 초점을 농산물의 안전성(safety), 우수한 품질(quality), 다양성(diversity)에 맞추고 있다. 때문에 농산물의 장거리 교역보다 지역 내 생산과 소비를 강조하고 있으며, 먹거리 안전을 위해 유기농업 등 대안체제를 서둘러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본도 식(食)과 농(農)의 재생 플랜을 통해 생산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자국 농업보호를 통한 먹거리 안전을 강조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토종 농업을 포기하고 있다.

미국은 거대한 나라다. 산업화의 상징인 자동차 대신에 자국의 농산물을 한국 시장에 판매하려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이러한 ‘거대함’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세계 식량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곡물기업이 대부분 미국에 있다. 이들은 자동차보다 식량을 통한 세계 지배가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아가 식량산업이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생명공학부터 문화산업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맥도널드 햄버거와 스타벅스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한미 FTA로 인해 이렇게 중요한 농업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한번 잃어버린 농업은 몇몇 스타 농가의 성공담이나 고령 농가에 대한 복지지원으로 환생시킬 수 없다. 그래서 농업의 미래가 암울하다. 그러나 더 암울한 것은 미국의 거대 농기업에게 저당 잡힌 우리의 생명이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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