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백수
청춘 백수
  • 김원규
  • 승인 2007.04.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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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점 고객 중에 어르신 한 분이 계신다.

미수(米壽)를 넘기신 아담한 체구에 정갈스러운 분이다.

수년 전에 고객으로 인연을 맺었다.

어찌나 총명하신지 펀드는 어떻고, 보험은 왜 필요하고 은행원 못지 않은 금융상품 지식을 갖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요즘의 택배회사라 할 수 있는 호남정기화물 정읍지사를 경영하여 궁색하지 않을 만큼 돈도 벌었고, 2남4녀를 교수, 의사, 은행 지점장으로 훌륭히 키워 내셨다.

인생은 나선형이라 했다. 어찌 그 어르신이라고 어려움이 없었을까.

한 때는 공직에 몸을 담은 적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고지 정읍에서 본인이 원하지도 않은 남원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이 무슨 날벼락이람’ ‘기계처럼 일한다’는 평판을 들을 만큼 성실의 대명사였던 어르신은 여인숙에 홀로 앉아 눈물의 시간을 보내기를 수 개월.

요즘처럼 교통편이 발달하지도, 주5일제도 아니던 때라 가족과 상의해서 그만 두기로 했다.

긍정의 힘으로

하지만 생업이 망막했다. 당시에 일면식도 없는 호남정기화물 사장께 정읍지사 설립을 요구하여 승낙을 얻어냈다. 화물사업이 전화위복이 된 연유(緣由)이다.

그 말씀 끝에 세상사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지'하고 던져 주신 화두다.

플러스 발상이요 긍정의 힘이다.

며칠 전 그 어르신이 오신 것이다. 부임이후 첫 만남이다.

자리를 권유했더니 ‘견아중생(見我衆生) 환희발심(歡喜發心)’이라 쓰셨다.

‘모든 사람이 나를 보면 기쁜 마음이 일어 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지점장이 예전에 써준 글이야’. ‘그 말 기억하고 있지’

내게는 기억도 없는 경구를 또박또박 적어 주시는 연륜의 무게 앞에 왠지 자꾸만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친절의 기본에 대해 말씀 드린 것 같은 생각이 되살아 났다.

어르신은 내게는 또 한 분의 라이프 코치이시다.

수년 전에도 그랬듯이 우리 지점을 들르실 때 마다 좋은 한문 경구를 주시곤 한다.

오늘의 말씀도 있다. ‘불경일사(不經一事)면 부장일지(不長一智)니라’

‘한 가지 경험을 겪지 아니하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욕존선겸(慾尊先謙)내가 존대 받고 싶으면 겸손해져라’는 말이다.

“나는 위에서 아래로 쓰는 ‘세로 세대”야.” “가로세대는 예의 범절이 약해”. 젊은이들에 대한 경고성 훈화다.

어르신의 댁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영어 단어장은 봤어도 ‘한문단어장’을 본일이 없어 깜짝 놀랬다.

“젊은이! 머리를 안 쓰면 이상한 병이 찾아올 수도 있다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외워지지 않으면 넘기질 않아요”. 할머님의 말씀이다.

지금도 신문을 즐겨 읽으시고 모 단체의 고문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에서 활기(活氣)를 느낀다.

세상사는 지혜

건강유지 비결을 여쭤 보았다. “큰 욕심 버리는 거야.”

지금 우리는 노령화 사회에 살고 있다. 세월의 흐름을 그 누구도 붙잡을 수 없다.

미래의 노인으로서 귀담아 들을 얘기다.

요즘 세상을 너무 쉽게 살려는 젊은이들에게도 한 말씀 덧붙이셨다.

“세상에 공짜없는 법이야”. 한마디 한마디에 세상사는 지혜를 읽는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다.

“난 백세는 넘길 거라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지천명에 접어든 지금 나도 어르신처럼 아름답게 나이들고 싶다.

신우창 어르신! ‘백수(白壽) 청춘’ 행복하세요.

<농협중앙회 효자동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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